안녕 결, 민경이야.
이월 어떻게 보냈니, 잘 지내고 있었을까?
같은 질문을 내게도 던져 보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달력 어플을 켜보았어.
빼곡하게 박힌 일정들을 보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내가 다 좋아서 만든 일들이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돼.
이월 정말 고생 많았다고 내게 이야기해주고 싶어.
그리고 너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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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은 종종 울고 싶었어.
이제 곧 개강이라고 무리하게 교육 일정을 잡아 두기도 했었고, 상담 실습에서 조금 아쉬운 말을 하기도 했었고, 또 이번 학기부터 조교로 일하게 되어 인수인계 받는다고 정신이 없고 새로운 룸메와 여러 조율할 사항이 있기도 했었거든. 그리고 크고 작게 상처받는 일들도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꽤나 부담스럽게 다가왔는지 울고 싶더라고. 하지만 바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어.
마음을 정리해 보려 조금 전 오후에는 일기를 썼었어. 뭐가 힘들었는지 적다 보니 내가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나를 잘 달래고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나를 돌보지?' 잠깐 생각하다가 나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했어.
쓰던 일기에 이어 편지를 썼는데,
'민경아' 부르고 '오랜만이야'라고 적었을 뿐인데 눈물이 나더라고. 그리고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받은 상담에서 선생님께서 자신을 응원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괴로울 뿐만 아니라 되게 외롭기도 할 것 같아요. 자기가 정말 열심히 도전하고 노력해서 얻은 성과를 되게 지지해 주면서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하는 그런 내면의 응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약간 비틀어서 그 값을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강하게 느껴지네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때, 그래서 내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을 종종 느꼈던 거구나 깨달았었어. 그리고 또 이렇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반대로, 내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위로해 주어 외롭지 않아 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 그게 참 좋고 든든했어. 그러고 나니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연락할 힘이 나서 또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지.
아침까지만 해도 너무 정신없고 힘든 상황이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이 상황에 조금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해. 내가 나를 응원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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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너도 너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니, 만약 없다면 한 번 써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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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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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지금의 고통이 영원히 네게 머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간은 흐를 거고, 내가 너를 도울테니-
사랑해 민경아,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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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편지의 마지막 문단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제목으로 정했지. <사랑해,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많이>. 사랑하는 능력이 생존과 직결되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계관을 가진 SF 소설이야. 재밌을 것 같지 않니?
요즘처럼 현실이 영 녹록지 않을 땐 소설이 참 잘 써지는 것 같아. 잠시 도망갈 다른 세계를 만드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은 여름 전에 완성하는 것이 목표인데 나중에 네게도 이 소설을 소개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번 편지를 쓸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봄이 왔을 거라 기대했었는데, 내일 눈 예보가 있더라고. 삼월의 눈이라니. 다음 편지에서는 봄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때까지 몸과 마음 건강히 지내길,
진심으로 바랄게.
2025.03.02.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