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오월의 첫 편지야.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 창으로 하늘색을 꼭 확인하거든, 그 색으로 하루의 날씨를 점치곤 해. 오늘은 그 창을 보며, '날씨 예술이겠군'하며 양치를 했어. 아니나 다를까,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어.
오월의 첫날은 부암동에서 보냈어.
부암동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고즈넉한 동네야. 석파정 미술관과 환기 미술관이 있어 웅장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유동인구가 적고 집들이 궁궐같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금 쓸쓸하기도 해. 그 동네에 만두를 먹으러 갔어. 자하 손만두라는 곳인데 떡만둣국을 조랭이떡으로 만들어서 귀여워. 연두, 분홍, 노랑 색색으로 빚은 만두도 예쁘고 말이야.
하루 종일 맛있는 걸 먹고, 흠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바다같이 푸른 가로수 아래를 걸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 박힌 돌덩이 같은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어.
부암동으로 가는 버스 안,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었어. 서울 곳곳에서 시위를 한다는 기사였지. 친구는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했고, 좁아진 차선에 내가 탄 버스도 영 속도가 나지 않았어. 창밖으로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 그 모습을 보는데 조금 전 국회의사당 앞을 지날 때 보았던 피켓이 떠올랐고, 시청을 지날 때 보았던 어떤 죽음을 추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어. 그리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 이 도시에 켜켜이 슬픔과 분노, 모멸이 쌓여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풍경을 봐놓고도 친구에게 '오늘 같은 날 집에 있으면 지는 거야'라는 농담을 던진 내가 조금 싫어. 날씨가 어떠하든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 날씨가 예술이라도 마음이 조금도 밝아질 수 없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렇게 자책하고 있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래서 죄책감은 잊고, 대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어. 유명 정치인이 혐오 발언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뱉고, 노키즈존이 유행처럼 번지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불편하다'라는 말로 밀어내는, 배척하고 모멸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명제가 유전자에 새겨지고 있는 지금 말이야.
나는 환대라는 말을 떠올려보았어. 다른 존재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마음을. 특히 어린이날이 다가오는 요즘, 어린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나는 어릴 때를 생각하면 환영받았던 기억이 먼저 떠올라, 공원이든 식당이든 가게든 어디에서든, 내려다보던 다정한 눈빛을, 단 것을 건네는 손과 미소를, 몇 살이에요? 물어오는 살가운 목소리를. 그 기억으로 나는 이제껏 사랑하고 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어린 시절은 굳기 전의 촛농 같아서 외부 자극에 쉽게 변형되지, 그리고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미처 길러지지 않아 타인의 평가를 내 것처럼 받아들이게 돼. 그 시절에 환대를 받는다면 나를 사랑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고, 대신 배척과 멸시를 당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가겠지. 환대만 받은 사람도, 배척만 당한 사람도 없을 거야. 하지만 요즘에는 후자가 너무 만연한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작은 다짐을 하나 했어. 일상 속에서 환대를 한번 실천해보자고. 첫 번째로, 다가오는 어린이날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작은 쪽지와 함께. 문구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온 세상이 너를 환영해'로. 어때? (웃음)
그리고 오늘은 너에게 이 질문을 건네고 싶어.
네가 어릴 때 받은 가장 따스한 환대는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너를 지탱하는 어떤 기억 말이야.
혹시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가까운 날들에 받았던 환대를 이야기해 줘도 좋아.
끔찍한 일들이 인간들로부터 매일 일어나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해.
내가 받아왔던 다정을 디딤돌 삼아, 이 도시에 새로운 환대를 켜켜이 쌓아올릴 거야.
결, 안전하고 평안한 오월 첫 주를 보내길 바랄게.
다음 주에 다시 만나.
2022.05.01.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