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편지를 쓰기 전에 일주일 동안 써둔 일기를 보곤 하거든. 근데 오늘은 일기 없이 편지를 시작했어.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들더라고. 쉽지 않은 한 주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눈에 띄게 나쁜 일은 없었지만 성큼 다가온 여름에 당황하기도 했고(방에 볕이 많이 들어 오후에는 바깥보다 더운데 에어컨 리모컨을 잃어버렸지 뭐야), 다음날 일정이 가득한데도 새벽에 게임을 하느라 잠들지 않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어. 그렇게 혼란한 와중에 나를 가장 강하게 잡아준 건 피아노였어. 나는 요즘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점심시간을 쪼개 피아노를 치고 오고, 늦은 밤에도 연습실을 찾고, 주말에도 꼭꼭 학원에 들렸어. 그 시간들 덕분에 어려운 한 주 속에서도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도 완전히 놓지 않을 수 있었어.
피아노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야. 여섯 살 무렵 가진 첫 장래희망이 피아니스트였거든, 그때는 아마도 아는 직업이 피아니스트뿐이라 장래희망으로 삼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상당히 진지했던 기억이 있어. 피아니스트라는 꿈은 그 후로 무려 7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같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이랑 미래에 함께 피아노 학원 개업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도면까지 그렸었어). 중학생 때부터는 모종의 이유로 피아노 학원 대신 미술 학원을 다니게 되었어. 그럼에도 화가가 꿈이었던 적은 없었으니, 피아노가 내게 애틋한 존재였던 게 맞는 것 같아. 그 후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교를 가며 피아노를 잊었었어. 취업을 하고도 피아노와의 관계는 마찬가지였지. 그러다 재작년 가을부터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어. 피아니스트라는 꿈은 없어졌지만, 손가락들이 굳어 예전의 또랑또랑함은 잃었지만 일주일에 4번 피아노를 치러 가.
피아노를 치는 일은 나에게 수학 공부를 하는 일 같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는 일 같기도 해.
피아노에는 규칙이 아주 많아,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포르테(세게)처럼 세기를 알려주는 셈여림표도 있고, 레가토(음을 이어서 연주), 스타카토(음을 끊어서 연주)처럼 이음과 맺음을 알려주는 연주 기호도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음표가 있지. 음표는 어느 건반을 얼마나 오래 눌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호야. 이외에도 피아노 치기에는 정말 많은 규칙이 있어. 그런 규칙이 답답하게 느껴지냐면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어. 그 규칙들의 총합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곡은 정말 아름답거든. 그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규칙을 얼마든지 따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돼. 학창 시절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방정식을 풀면서 '정말 아름다워!'라고 말하는 걸 종종 듣곤 했거든, 그때마다 수학 문제 앞에서 저런 말을 내뱉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했는데 피아노를 치며 그 감각을 조금 느껴보게 되었어. 물론 규칙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내 손가락이 자주 원망스럽지만, 규칙이 규칙인 것도 까먹을 정도로 손에 익으면 아주 자유로운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그 순간이 정말 드문데 그만큼 짜릿해.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일이 친구를 사귀는 일과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력의 향상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곡을 만나면 항상 새로운 마음이 되기 때문이야. 그 새로운 마음이라는 건 두근거림에 두려움이 살짝 섞인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친구를 사귄 경험도 점점 쌓이고 있지만,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이 사람과 내가 친구가 되는 경험'은 하나뿐이니까. 예시나 연습이 없고 모든 것이 미지수기 때문에 설레고 두려운 것 같아. (그래도 사람을 대하다 보면 능숙해지는 거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사실 조금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느슨함에서 실수를 하게 되고 더 나쁘게는 상처를 준 일도 있었거든.)
새로운 피아노 곡 앞에서도 매번 그런 마음이 되곤 해. 음원을 듣고 홀딱 반해서는 설레는 마음으로 악보를 인쇄해서 피아노 앞에 앉아.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면 악보를 엉망으로 읽어 상심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아름다운 표현에 기뻐하기도 해. 그리고 느리지만 매일 조금씩 손가락이 악보와 어우러지는 걸 보는 게 가장 신나는 일이야.
지금 새로 연습하고 있는 곡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인데 제목이 주는 몽환적이면서도 따듯한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곡이야.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초여름의 소나기처럼 청량한 부분, 그 후 긴 여름과 장마가 끝난 후, 앞선 계절을 살아낸 존재들의 안부를 묻듯 부드럽게 시작되는 가을까지가 담겨 있다고 나는 느껴. 여러 환절기와 사계가 담긴 이 곡이 나는 너무 반가워. 지금은 비록 도입부의 봄 앞에서도 전혀 부드럽지 못하고 삐걱거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곡과 아주 친하게 지낼 날이 올 거라는 걸 알아. 진심을 담아 대하고 있으니까.
계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사람과의 관계도 계절로 비유하는 걸 좋아해. 이 비유를 떠올린 건 질투하는 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어. 언젠가 편지에서 내가 말했지? 접점이 없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노는 걸 좋아한다고. 그게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질투가 나는 순간이 있어. 나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들이는 에너지나 몰입도가 약한데, 새로 생긴 관계에는 더 많은 공을 들이곤 하잖아. 그걸 알면서도 그 모습을 볼 때 미운 마음이 생기곤 했어.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지. 저 친구들과 나의 관계는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라고, 그래서 별다른 품이나 열정 없이도 맑은 날을 보낼 수 있는 거라고. 반면 저 친구들은 봄과 한여름을 지나고 있다고 서로를 열렬히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계절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 질투가 사그라들더라고.
이 계절 비유가 좋은 이유 한 가지 또 있어. 계절은 다시 돌아오잖아. 가을이었던 관계가 시간을 지나 다시 봄이 되고 여름이 되기도 하는 걸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게 좋아. 영원한 관계는 없고, 모든 건 변한다는 말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 변화의 양상이 계절을 닮았다면 그건 재밌는 일이라 생각해.
그래서 오늘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건 너의 관계들 중 지금의 계절, 그러니까 초여름을 닮은 관계가 무엇인지야. 지금 생생히 지나고 있는 초여름의 관계도 좋고, 언젠가 지냈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좋을 것 같아.
너에게 초여름은 어떤 계절일지,
네가 말해주는 관계를 통해 유추해 보고 싶어.
또 반대로 네가 말해주는 관계는 어떤 결일지,
네가 생각하는 초여름의 이미지를 통해 상상해 보고 싶어.
다음 편지를 나눌 때면 또 훌쩍 푸르고 더워져 있겠지?
볕이 가득한 계절을 건강하게 맞길 바라.
다음 주에 또 편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