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이제 마른 여름이 올 거라는 지난 편지의 끝인사가 무색하게, 지금 이곳에는 비가 오고 있어. 일정 없는 일요일이라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가 마냥 좋아.
칠월의 마지막 날이 동생 생일이라서 고향에 내려와 있어. 달마다 고향 집에 올 때면 무언가 조금씩 변한 것들을 발견하곤 하는데, 부모님이 집에 식물을 들이고 난 후에는 지난 풍경이 아득해질 정도로 변화의 폭이 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의 장소는 마당의 작은 텃밭이야. 유월에만 해도 노란 해바라기에 시선을 모두 빼앗겼었는데, 이번에는 가지가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더라고. 가지꽃을 본 건 처음이었어. 가지 색을 꼭 닮은 꽃받침과 제비꽃처럼 연보랏빛을 띤 꽃잎을 생경해하며 여러 번 만져 보았어. 단단함과 보드라움이 함께 느껴지더라. 문득, 어제저녁에 먹은 가지 반찬이 떠올라서 목청껏 2층에 있는 엄마를 불렀어.
"엄마! 내가 어제 먹은 가지가 이 가지야?"
엄마의 그렇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묘했어. 예전에 여러 작물을 씨앗부터 심어 키워 드신다는 분께 바질 나눔을 받은 적이 있어. 분홍색 화분에 담긴 잎 두장 짜리 작은 바질을 집까지 데려오면서, 과연 내가 이 바질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 바질이 너무 귀여웠거든. 비록 물 조절을 하지 못해서 바질은 잎끝이 까맣게 변하면서 죽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그 화분을 버리지 못했어. 그리고 질문 하나를 가지게 되었지. '내가 사랑하는 걸 먹을 수 있나?' 내가 텃밭에 있는 가지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기분이 묘해진 것도 이 질문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 그 짧은 사이에 가지가 참 많이 좋아졌구나,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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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템플스테이를 다녀왔어. 지난봄, 경주 영흥사를 잠깐 둘러 걸었었는데 그때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지는 게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절에 계속 가보고 싶었거든. 이번에는 안동의 봉정사에 다녀왔어. 단순히 방에 에어컨이 있고, 고향 집에서 멀지 않다는 이유로 선택한 절이었는데, 기대했던 풍경과 미처 상상하지 못한 풍경들 속에서 땀을 쭉 빼면서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는 이틀을 보냈어. 몇 가지 기억에 남은 풍경 이야기를 들려줄게.
봉정사의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고 해. 원래는 부석사 무량수전이라 알려져 있었는데, 1972년에 극락전을 수리하다가 1363년에 지붕을 보수했다는 묵서(종이에 먹으로 글을 쓴 것)가 발견되면서, 극락전이 12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지.(목조건물 보수 시기가 약 150년이라고 해) 1200년에 지어졌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1363년의 누군가가 써둔 묵서가 1970년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 그 누군가는 자신의 손글씨가 400년이 지나 발견될 것을 알았을까? 그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자리가 바뀌게 될 것도.
빨강과 파랑, 그리고 민트색을 닮은 초록의 화려함으로 잔뜩 물들어있는 단청을 볼 때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질감을 느꼈어. 전혀 옛것 같지가 않았거든. 그런데 봉정사의 단청들은 모두 흐릿하게 바래 있었어. 해설자 분의 말로는 처음 칠해진 후로 한 번도 덧칠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 그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어. 보수되지 않은 것들은 역설적으로 '처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니까. 보수라는 것이 무언가를 처음과 가깝게 보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나는 보수되지 않은 무언가를 볼 때 그 처음에 대해서 더 오래 상상해보는 것 같아. 물론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지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바랜 단청을 들여다보면서 이 장소에 들이쳤을 비바람과 내리쬐었을 햇빛, 수없이 바뀌었을 계절과 이곳을 거닐었을 여러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어. 겹겹이 쌓인 시간들 덕분인지 그 장소에 서 있는데 어떤 포근함을 느꼈어. 그리고 나 또한 단청의 기억 중 일부가 되겠구나 싶어서 괜히 마음이 환해지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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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를 할 때 체험형과 휴식형 중 후자를 선택했었는데 말이야, 친구가 일정표를 보더니 '우리 휴식형 선택한 거 맞죠?'하고 묻더라고. 새벽에 잠들어 출근 시간 아슬하게 일어나는 평일과 늦출 수 있는 만큼 취침시간을 미루고, 한낮에 깨어나는 주말을 지내는 우리에게는 저녁 9시에 잠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는 생활 자체가 어떤 훈련 같기도 했어. (웃음) 예불 자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어. 공부를 일절 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불경이 암호 같았고, 음을 맞추어 읽기에도 어려웠어. 절을 하는 타이밍도 몰라서 허둥거렸고, 에어컨 없는 실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방석에 땀을 뚝뚝 떨어트리기도 했지. 그럼에도 스님들과 시간을 맞춰 생활하고, 예불을 드리는 이틀이 좋았어. 이곳에서의 삶을 잠깐이라도 경험해볼 수 있었으니까. 새벽 4시, 목탁 소리에 잠이 깨어 아직 별이 지지 않은 하늘 아래를 걸어 대웅전으로 가 예불을 드리고, 바깥으로 나와서는 해가 뜨기 직전 어스름한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어. 절을 둘러 걷는 스님들을 보면서, 이곳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생각했어. 사실 그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뭔가 물으면 안 될 것 같았어.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가 나와는 다른 것 같았거든. 혹여 내 질문이 난해한 물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호기심 어린 표정에서 무례가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어. 하지만 언젠가는 꼭 묻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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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사찰 설명을 듣는 내내 친구의 양손은 조개처럼 오므려져 있었어. 마치 새의 알을 조심스럽게 품은 사람처럼. 그 안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두더지가 있었어. 사찰 설명을 들으러 사무실로 갔는데, 해설자 분이 땅을 파고 있었거든. 나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친구는 다가가 보았지. 그곳에는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 두더지 한 마리가 있었어. 아직 숨이 붙어있는데 개미들이 몸을 물어뜯으려 붙어 있었다고 해. 친구는 급하게 그 두더지를 집어서 개미를 떼어내고 손에 쥐었다고 해. 어떤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행동이었을 거야. 포유류인 두더지는 어미의 젖과 품이 필요한데 친구에게는 우유 비슷한 것도 없었지. 친구는 일단 손안에 작은 품을 두더지에게 내어주며 사찰 설명을 들었어. 두더지는 사찰 안내가 끝나기 전에 숨을 놓았고, 우리는 두더지를 묻어줄 양지바른 곳을 찾아다녔어. 우리가 고른 곳은 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작은 언덕이었어. 흙을 파고, 은행잎으로 바닥을 채워 그 위에 두더지를 놓고 짧은 기도를 했어. 흙을 덮어주고, 그 위에 이르게 떨어진 연두색 은행 한 알을 올려두었어. 일련의 행동, 일종의 애도를 마치고 일어나니 절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더라고. 탁 트여있으면서도, 은행나무가 앞을 든든히 채워주고 있어 안전하게 느껴졌어.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그냥 그 자리에 두더지를 두었어야 했다며 후회했어, 더 고생시킨 것 같다면서. 친구의 마음이 이해되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어.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어.
"00학우*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두더지는 산 채로 개미들한테 뜯겼을 거예요. 그리고 두더지는 00학우 손안에서 마지막까지 온기를 느꼈잖아요."
*대학 수업 때 만난 친구라 호칭은 그때부터 쭉 학우야.
우리의 대화는 거기에서 멎어서, 친구가 어떻게 마음을 정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친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두더지를 손에 쥔 친구를 보면서 그 친구를 조금 더 존경하게 되었어. 숨이 겨우 붙어있는 어떤 존재와 관계 맺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상처를 선택하는 일이니까. (친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겁이 많아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채로 행동하고 또 그에 따라오는 일들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움직이곤 해. 닮고 싶어서, 그들의 곁을 탐하곤 하지.
감정에 솔직한 채로 행동하는 건, 때론 상처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두더지를 품은 친구에게 애도의 시간이 찾아왔듯이 말이야. 나에게도 그런 장면 몇 가지가 있는데,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지나고 나니 후회도 없고 그런 선택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결, 오늘 너에게 이 질문을 건네고 싶어. 너의 감정에 솔직하기 위해서 상처를 선택해본 적 있어?
*
코로나19가 다시 성큼, 일상을 침범해오고 있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야. 나도 지난주에 만난 친구가 양성 판정을 받아서 한주 내내 작은 증상들에도 화들짝 놀라면서 지냈어.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른 것 같아. 봄에 확산세가 조금 줄어서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며 즐거워했었는데, 다시 몸을 움츠릴 생각을 하니 답답하더라. 기획해둔 모임이 잔뜩 있는데 말이야. 모쪼록 모두 건강히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결아, 우리
마음도 몸도 건강히, 평안히 지내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