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오늘은 여행지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20년 지기 친구들과 늦여름을 보내러 포항에 왔거든. 바다를 보고, 밥을 챙겨 먹고, 이런저런 게임을 하다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더라고. 아까 자정을 넘길 즈음에 잠깐 졸아서 그런지 지금 정신이 엄청 맑아. 일출이 2시간 남짓 남았는데, 조금 잘까 하다가 이 편지를 써. 친구들은 위층에 누워 잠깐 소곤거리더니 지금은 잠든듯해.
얼마 전 친구가 타로를 봐줬는데 건강을 챙겨야 할 시기라고 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소설을 쓴다고 엉망이 된 취침 시간이 떠올랐지. 제때 분비되어야 할 물질들이 내가 잠들지 않아 자꾸 생략되어 호르몬이 난리가 나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어. 친구의 당부를 듣고 일상을 바꿔야겠다 다짐하고 조금씩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말짱 도루묵이 되었네. (웃음) 그래도 괜찮아, 여기는 여행지니까.
예전에는 여행을 통해 나를 만난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어. ‘나’는 언제나 여기 나와 함께 있는데 떠나서 무얼 만난다는 거지 싶었거든. 그런데 20대 초반, 제주에서 한 달 반 동안 지내면서 비로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낯선 곳에서는 낯선 일들이 매일 일어났어. 게스트하우스에서 키우는 개의 목줄을 누군가 잘라두어 도망간 개를 쫓아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일이라던가, 술자리에서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꼭 쥐고 있던 휴대폰을 그만 내가 넘어져 버려 깨버리는 일이라던가, 동전 노래방을 찾아서 다른 동네까지 다녀오는 일이라던가, 불 꺼진 미술관을 관람하는 일이라던가 말이야. 그 일에 반응하는 나는 이제껏 내가 몰랐던 나였어. 어느 여행사의 홍보 문구처럼 느껴졌던 ‘여행에서 새로운 나를 만난다’는 말에 어떤 과장도 없다는 걸 깨달았지. 낯선 장소와 상황에서 기민하게 깨어나는 감각, 생각, 행동 속에서 몰랐던 나를 목격했으니까.
그때 제주에 휴학까지 하면서 오래 머물렀던 이유는 어떤 세계와 헤어지고 싶었기 때문이야. 이미 그 세계가 끝났는데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몽롱하게 꿈속에 있는 듯 지내고 있었거든. 그 세계에 너무 푹 빠져 살아왔었기 때문에 일상 곳곳에 그 흔적이 너무 많았어. 그래서 나를 다른 공간에 두려고 제주로 떠났던 거야.
그때의 나는 “이미 이해한 세계는 떠나야 한다”는 김소연 시인님의 시구를 좌우명처럼 가슴속에 품고 살았어. 그것은 나에 대한 위로인 동시에 어떤 다짐이기도 했어. 제주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원했던 대로, 끝난 세계로부터 크게 애쓰지 않고 떠나올 수 있었어. 떠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히 만난 귀인처럼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몰랐던 나와도 자주 마주할 수 있었어. 부러 수식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아름다운 바다 근처에 살면서, 바다 못지않게 환한 인연들을 여럿 만났었어. 그래서 두달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었어. 그 세계를 이해하기 전에 떠나기 위해서, 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두기 위해서. 그런데 떠나온 세계는 그것의 이해 여부와 관련 없이 완결되어 버리더라고.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곳이 지겨워질 때까지 머물렀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선택이 후회스럽진 않아.
그런데 결아, 나는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
떠나온 세계는 내가 떠난 그 순간에 일시 정지 버튼이 눌리는 게 아니잖아. 나 없이도 생동하는 온전한 세계지. 그렇기 때문에 이해한 세계도 언제든 다시 미지의 세계가 될 수 있다 생각해. 재미있는 점은 모든 게 변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 세계에 대해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도 있다는 거야. 그럼 그 세계는 복합적인 곳이 되는 거지. 낯선 나와 익숙한 내가 공존하는 세계가. (음, 어쩌면 이런 나의 생각이 떠나온 세계에 대한 미련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나는 미련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으로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어)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들은 내게 낯선 존재들은 아니야. 오히려 고향 같은 친구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내게 익숙한 세계.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있으면 유년의 모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그게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져. 이리저리 마음을 가리는 데 공을 들이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그래서 그걸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여덟 살이었으니까. (웃음) 그 세계에서 떠나왔지만, 어쩌면 그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
이 친구들과 같은 존재들이 내게는 몇몇 더 있어. 만나면, 함께 지냈던 그때로(대체로 그리워하고 있는 시기들)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들 말이야. 그때의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있으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세계의 초침이 다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럼 나는 그 세계가 끝나지 않았다고 믿게 되지.
그런 세계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 시기를 사람으로 마음에 새겼다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으로 기억된 순간들이란 거지. 그런 순간은 내게 생동하는 존재처럼 여겨져 영원을 믿게 만들어.
결, 너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니? 사람으로 기억되어, 이미 완결된 시기임에도 영원에 가까운 순간들 말이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도돌이표를 가진 연주곡 같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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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지낼 때 일곱 살이 많은 언니들과 자주 술을 마셨어. 언젠가의 대화에서 언니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풍경, 맛있는 음식 다 좋지만 결국 남는 건 사람’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는 속으로는 삐딱선을 타며 ‘나는 아닌데?’했었지. 하지만 언니들의 말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걸 깨닫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었어. 이 편지도 아마 언니들의 그 말 덕에 쓸 수 있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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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생과 함께 가을이 시작되었어. 점점 깊어지는 가을 하늘에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하기도 했던 한주였어. 매미 소리도 한풀 꺾인 듯 잔잔하게 들려오네. 나는 사실 여름을 보낼 준비를 아직 덜 해서 천천히 가을을 맞이해볼 생각이야.
그럼 결아, 환절기 감기 조심하고.
한 주 동안 마음 평안히 지내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