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한 주가 지나갔어. 바깥은 가을이 한창인데, 그걸 마냥 즐기기에는 마음이 따르지 않던 한 주.
그 주의 시작에 나는 정동진에 있었어. 정동진에 가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었던 여행이었어. 정동진에서의 이동 반경은 굉장히 좁았어. 정동진역과 정동진 해변, 그리고 하룻밤을 머물렀던 서점, 근처의 두부 백반집과 편의점, 작은 카페가 내가 그곳에서 머문 장소의 전부야. 관광객이 모두 빠져나간 일요일 오후, 그곳에 도착해서 쓸쓸했을 법도 한데, 서점 사장님들의 조용한 환대 덕분에 처음 가본 그곳이 마치 어릴 적 잠깐 살았던 동네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초콜릿을 사 먹고, 글을 쓰고, 오래 걸을 수 있었어.
강릉역에서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갔어, 강릉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버스에서는 다섯 시간을 꼬박 보냈는데, 체감은 두 시간 남짓이었어. 두 시간 동안은 비몽사몽 졸고, 일어나서는 내내 울었던 것 같아. 10.29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기사를 보았고, 책임자들의 낯부끄러운 말들을 들었고, 사람들의 의견을 찾아보았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는데, 투박하게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무력함과 부끄러움이 섞인 감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처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날씨가 좋다고 느끼고,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내가 부끄러웠어. 정동진에 온 것 자체가 부적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애도와 일상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비참하고 슬픈 마음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기뻐하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 그래야 지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여전히 애도 중이고, 우리에겐 아직 밝혀야 할 진실이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다는 의미다”(양희, 다큐하는 마음 26p 中)
누군가는 이 참사가 교통사고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는 말을 쉽게 뱉고, 산 사람은 살자고 하지만 그건 참사 희생자에게도, 유족들에게도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우리에게도 그리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아. 충분한 애도를 위해서는 그 죽음에 관한 진실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해. 더욱이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번 참사와 같은 일이라면 그 진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공동체가 회복될 수 없다 생각해. 그러니까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겹다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순한 사고로 서사를 마무리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
*
정동진에서 돌아온 다음 날에는 외근을 마치고 이태원역에 다녀왔어. 애도를 위함이었지만, 그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 애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거든, 그 감정을 나누고 싶었거든.
이른 시간이라서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꽃과 쪽지들이 놓인 곳에는 사람들이 붐볐어. 차도까지 아슬하게 선 사람들 사이로 가는 게 여의치 않아 건너편 길에서 그곳을 바라보았어. 여러 대의 카메라가 참사 현장과 추모 공간을 찍고 있었는데, 그게 필요하다 생각되면서도 탐탁지 않았어. 참사 당시의 영상이 최소한의 모자이크도 없이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되던 걸 보며 충격을 받았었거든. 부러 검색하지 않아도, 뉴스에서도 그런 장면이 흘러나왔어. 그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게도 있었어. 그 마음이 징그러웠어. 그 마음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재난은 쉬이 전시되곤 하는데, 그것이 본능에 가까운 마음이라면 의식적으로 막아야 한다 생각해. 현실을 영화나 드라마처럼 소비해서는 안 되니까. 유희를 느껴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그 길을 향하고 있는 카메라들이 탐탁지 않았어.
건너편에 서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어. 주변 몇몇 사람들이 함께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음에 작은 방파제들이 세워지는 기분이었어. 조금 단단해진 마음을 가지고 녹사평역까지 씩씩하게 걸었어. 그곳 분향소에는 ‘사고’, ‘사망자’라는 단어가 적혀 있어 마음이 일그러졌지만, 이 참사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 헌화했어.
*
사고가 사고로, 참사가 또 다른 참사로 덮어지는 요즘이라서 주변 사람들의 안부가 무엇보다 궁금한 날들이야. 동시에 그걸 묻기가 점점 더 망설여지는 것 같아.
결, 오늘은 질문 대신 네 안부를 묻는 말을 건네고 싶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니?
*
그럼에도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말로 이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실없는 논쟁을 하다 웃기도 하고, 깜짝 이벤트를 해보기도 하고, 만나고 싶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유난한 노랑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나는 잘 지냈어. 너에게도 그러한 날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