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뭐가 그렇게 정신없었는지, 오늘 얼굴에 선크림도 안 바르고 출근했지 뭐야. (웃음) 연휴를 늘어지게 보내지 않아서, 금방 일상에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주말에는 밀린 빨래 하면서 푹 쉬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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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사진 일기를 쓰는데 유난히 사람들과 붙어있는 사진이 많았어. 그걸 보며 '겨울은 애착이 쉬운 계절인가?' 생각했어.
애착은 타인에게 느끼는 강력한 정서적 유대를 말해. 겨울은 추우니까, 더 가까이 있고 싶어지고, 그렇게 붙어 있다 보면 마음으로도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어.
언젠가 애착은 생존 본능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애착은 “유아를 자신의 보호자 곁에 있게 만드는 강력한 생존 충동”*이라고. 그러니까, 영아기 때부터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의존 없이 살아남을 수 없기에, 그런 시기에 보호자에게 형성하는 애착은 생존 욕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이지.
보통 아기는 자신에게 음식을 주고,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풀어주는 보호자에게 애착을 형성한다고 해. 특히 ‘영양분 공급’이 애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져 왔어. 하지만 이런 가설은 한 실험에 의해 뒤집히게 돼.
그 실험은 바로 원숭이 대리모 실험이야. 심리학자인 해리 할로우와 마거릿 할로우는 두 종류의 대리모를 설계한 후 아기 원숭이의 반응을 관찰했어. 한 대리모는 나무 머리와 철사로 만든 몸통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젖병이 달린 모습이야, 다른 한 대리모는 고무로 싸여있으며, 헝겊이 둘러져 있었지.
아기 원숭이는 먹이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대리모와 보냈어. 불안할 때 그 대리모와 접촉을 시도하며 위안을 얻고, 안정감을 되찾았지. 심지어 젖병에 접근할 때도 헝겊 대리모에 몸을 접촉한 채로 먹이를 먹으려 시도했어. 이 실험은 애착을 형성하는 데 ‘접촉’의 중요성을 알려주었어.
다시 애착은 생존 본능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위 실험에 따르면, 생존에 먹을 것이 필수적인 것처럼 ‘접촉’ 또한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밥만큼 중요한 게 손을 맞잡는 거, 등을 기대는 거, 포옹하는 거, 또는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맞닿아 위안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우리가 그렇게 진화해 왔다는 게 마음에 들어. 하지만 어쩐지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는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수천 년이 지나면 서로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류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선택**이론에 따라서 말이야.
수천 년 뒤의 인류 관점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미래는 너무 디스토피아적이라서. 그것보다 당장 현실이 너무 어려워서 해결 방법을 생각하게 돼. 거창하고 닿을 수 없이 이상적인 거 말고, 아주 미세하고 생활적인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돼. 그런데 오늘 점심을 먹으며 읽었던 책에서 한 가지 방법을 찾은 것 같아.
"거리에서 나는 바보처럼 혼자 웃고, 내 쪽으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다. 어린아이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남자들은 미소 짓고, 여자들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분위기에서 마주치는 상냥함이라니! 누군가가 "실례합니다" 중얼거리고 내 몸을 솜씨 좋게 미끄러져 지나갈 때 내 팔이나 등에 닿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익명적인 다정함은 어떤가 그런 다정함은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위안을 준다. 그럴 때면 나는 도시의 현실만큼이나 도시라는 관념 자체에도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사람들 역시 모두 멋져 보인다. 잘생기고, 감각적이고, 흥미로워 보인다. 삶이 아낌없이, 아무런 문제도 없이 흘러넘친다."(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19쪽 中)
이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
'출근길, 퇴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을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다정함을 행할 수 있는 존재로 보면 어떨까?'
더 이상 탈 수 없는 열차에 몸을 밀어 넣는 사람이나, 새치기하는 사람들에게 마냥 웃어 보이지는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익명의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기본값을 조금 더 부드러운 쪽으로 두는 건 나에게도 좋은 일일 것 같다고 생각해.
대중교통은 익명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모이는 활발한 공간이기에, 힘이 있는 공간이야. 이 공간에서의 문화가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거라는 게 내가 가진 한 가지 가설이지. 그러니 그 공간에 다정이 충분히 깃든다면, 혈관처럼 퍼진 전철과 버스들을 타고 다정도 멀리멀리 퍼지지 않을까 생각해. 그렇다면, 언젠가는 위안과 접촉이 유난스럽거나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될지도 몰라. (분명 거창한 거 빼자고 했는데 결론은 거창 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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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오늘은 두 가지 질문이 있어.
먼저, 혹시 어느 곳에 서라도 '익명의 다정함'의 대상이 되거나 목격한 적이 있니?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때 네 기분은 어땠을지 궁금해. 그리고 접촉이 어려워진 시대에 다시 심적/물리적 접촉을 부흥시킬 작은 행동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지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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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이번 한 주 편안히 보내길 바라.
그럼, 다음 주에 또 편지할게.
2023.01.27. 민경
* <마이어스의 심리학> 229쪽 中
**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이론'의 핵심이 되는 개념, 생존에 유리한 특질이 후세대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는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