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지금 읽고 있는 책 뒤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어.
“오직 세상과 온전히 관계 맺는 일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기 자신과 가까워진다”
요즘 이 말 덕에 용기를 내며 지내고 있어.
요 며칠, 기분이 오락가락했어.
기분이 오락가락한다는 건 신경이 예민하다는 말이고,
과하게 민감해진 신경은 모든 것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라디오 소리도 싫고, 매일 뿌리던 섬유향수 냄새도 싫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도 어렵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누는 일도 내키지 않았어.
그래서 외부와 접촉을 줄이고, 마음을 저 어디 깊은 산속에 피신시키듯 숨겨두었지.
피상적인 감정을 나누고, 관습과 습관에 기대어 생활했어. 불쑥 올라오려는 감정과 생각, 말들을 꾹 눌렀어. 곧 나아질 거야 생각하며.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아주 공적인 장면에서 눌러두었던 것들이 새어 나온 일이 있었어. 그 순간 너무 불안했는데, 그럼에도 속이 시원해서 뒤따라오는 말들을 조심스럽게 이어보았지. 그리고 깨닫게 되었어. 안팎이 예민하다고 문을 닫는 건 그 예민함을 고이게 하는 일이라는 걸. 그걸 더 단단하게 만들고, 어쩌면 그게 나를 삼켜버리도록 방치하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그 후에는 피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이 걷기도 했어.
외부 환경 중 내게 가장 자극적인 건 역시 사람이야. 그래서 예민할 때 가장 먼저 피하는 것도 사람이고.
예민해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게 싫었어. 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그런 나’를 나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야. 결국은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무서워하는 거지. 그런데, 나는 이미 예민한 나를 너무 싫어하고 있었어.
예민한 나도, 무던한 나도 모두 나인데, 예민한 나는 ‘나’에서 빼버리고 싶었어.
그게 가능할 리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것이 어긋나게 되었지.
‘세상과 온전히 관계 맺는다는 것’은 세상과 관계 맺는 주체인 ‘나’의 모든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인 것 같아.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가까워질’ 수 있는 거지.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았는데, 완독 후에는 생각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어.
머리로 아는 걸 마음으로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거라서.
아는 것과 다르게 ‘모든 나’를 단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 시작점이고,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믿고 싶어.
*
결, 너에게도 혹시 ‘나’에서 빼버리고 싶은 모습이 있니?
*
며칠 전 재택근무를 하는데 입이 자꾸 궁금해서 병아리콩을 한솥 삶아 먹었어.
따듯할 때 먹으면 고소한 밤맛이 나.
다음 날에는 작은 도시락통에 담아 회사에 들고 가서 책상에 두고 야금야금 하루 종일 먹었어.
건강에도 나쁘지 않고, 모양도 귀엽고, 식감도 오독한 콩이라서 너에게 소개하고 싶었어.
그럼 한 주 평안히 보내고,
다음 주에 또 만나
2023.02.18. 민경
추신. 인용한 문장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라는 책에서 가져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