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여기저기서 봄꽃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한 주를 보냈어.
나도 지난 금요일에 점심 산책을 하다가 이르게 핀 매화 한 송이를 보았지.
빈 가지에 압정처럼 콕 박힌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결, 너도 봄꽃을 만났니?
토요일은 조금 흐렸었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서 잘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비가 왔어. 타박타박 누군가 걸어오는 것 같은 소리가 창밖에서 들렸지. 잠에서 깬 후로도 침대에 그대로 누워 그 소리를 들었어. 봄비구나 봄비야. 기뻐하며.
*
이번 주에 재밌게 읽은 책이 있어.
아직 읽는 중이라 조금 설레발이지만, 그 책을 소개하고 싶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야.
사랑과 기술이라니, 어쩐지 안 어울리지 않니? 한편으로는 연애 스킬을 소개하는 책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 이러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 아래와 같은 당부를 남겼어.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유희가 아니라는 것, 노력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작가는 강조해. 모두가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고, 미디어에서 끝없이 재생산하는 헐리우드식 사랑에 대해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꼬집어.
그렇게 한참 동안 통속적인 사랑을 비판한 후, 그렇다면 사랑을 어떻게 연습할 수 있는지, 사랑을 위해 도달해야 할 개인적 성숙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이번 주에 읽었던 부분에서 특히 좋았던 내용은 ‘주는 것’에 대한 것이었어.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정말 그렇구나, 하며 이 문장을 읽었고.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그는 자기를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이 문장에 눈이 번쩍 떠졌어. ‘준다는 것’이 물리적인 측면만은 아니구나 하고.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준다는 게 정확히 뭘까. 궁금해하던 찰나 다음 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지.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중략) 그는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이 문장을 읽는데 옆자리 동료가 떠올랐어. 회사에 가져간 <사랑의 기술> 표지를 보고, 너무 예쁘다고 다 읽으면 빌려달라고 했던 동료. 다음 날 출근해서 그 동료에게 ‘00님은 <사랑의 기술> 안 읽어도 되겠어요.’라고 말했어. 이미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어제 이 문장을 읽는데 너무 00님 같아서 놀랐다고, 농담처럼 진심을 전했지. ‘나 그럼 부자인 거예요?’ 00님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어.
00님과 한 팀이 된 후로 정말 많은 것을 받았어. 남해에서 온 시금치부터, 통조림 토마토, 손소독제와 쭈꾸미, 간식거리들과 사무실 필수템 같은 것들. 물론 물리적이지 않은 영역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받았지. 내 표정을 살펴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이 울어주고, 장난에 쿵짝 장단을 맞춰주고, 그러니까 자신을 내어주고.
00님 옆에 있으면서,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 더 잘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닮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00님에게 받은 마음을 비슷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 보는 연습을 하기도 해. 에리히 프롬은 이런 현상을 아래의 문장으로 표현했어.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참으로 줄 때, 그는 그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너무 잘 쓰지 않니? 마음의 과정을 언어로 이렇게나 잘 풀어내다니. 조금 질투나.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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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00님의 아이와 00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나들이를 가기로 했어. 그 아이도 동료를 참 많이 닮아서, 그 아이에게도 많은 것을 받았어.
그래서 이번 나들이에는 그 마음에 보답을 하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중이야.
결, 너는 어때? 내가 소개한 문장들을 읽으며 떠오른 사람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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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흐릿한 건 겨울과 봄의 경계인 것 같아.
어제는 반소매 입고 산책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오늘 저녁에는 사람들이 패딩을 입었더라.
봄이라지만, 바람이 제법 부는 때에는 겨울 못지않으니 건강 조심하길 바랄게.
2023.03.12.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