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오늘 아침에는 잠을 푹 자고 일어났어.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틀고 아침 준비를 하려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핸드폰을 그대로 두고 프라이팬 앞에 섰어. 지난 금요일 사두었던 단단한 대저 토마토 두 개를 반입 크기로 잘게 썰어 볶다가, 계란 한 알을 깨어 함께 섞어주었어. 토마토 껍질 가장자리가 먹음직스럽게 오므라들고, 계란이 몽글하게 익을 즈음 불을 꺼주고, 곤약밥을 데워 함께 상을 차렸어. 그리고 일기를 쓰며 밥을 먹었어. 밥 한술 토마토 계란 볶음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일기 두 줄 쓰고, 또 넣고 쓰고, 그렇게 아침을 보냈어.
이런 아침은 낯설었어. 보통은 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거든. 그런데 오늘은 왠지 하루의 시작을 영상으로 하기 싫어서 일기를 써보았는데 좋았어. 밥을 먹을 때 보는 영상은 그걸 보고 싶어서 본다기보단 그냥 허전해서 틀어두는 거거든, 적적함이 가셔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게 스트레스가 되었나 봐.
반면 일기 쓰기는 참 좋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단정해지고 또 가벼워지는구나 싶었어. 그러다 뜨끔했지. 왜냐하면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영상 보는 건 거르지 않으면서, 조금만 바빠도 일기는 미뤄버리거든. 무언가 잘못되었군 싶었어.
오늘 아침 영상을 틀지 않은 이유가 있어.
이번 주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어. 그런데 하루 이틀 스트레스받았다고 바로 이명이 시작되고, 임파선 부근이 아프고, 피부도 엉망이 되는 걸 보면서 참 개복치가 따로 없군 헛웃음이 나왔지. 그럼에도 그런 증상 덕에 스트레스를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그 점은 좋았어.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해소법에 집중하기로 했어. 그리고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내 주관적인 판단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고.
에너지를 쏙쏙 빼가는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들을 먼저 정리한 후, 내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고 있는지 살펴보았어. 발견한 해소법은 요가와 영상 보기 두 가지였는데 꼼꼼히 따져보니 영상 보기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딱 보려고 했던 만큼만 볼 수 없다는 걸 알아서 트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더라고. 그리고 요즘에는 자극적인 영상이 많아서 보고 나면 정신에 독이 쌓이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 영상을 틀지 않은 거야.
그 덕분에 '일기 쓰기'라는 까먹고 있었던 스트레스 해소법을 다시금 인지하게 되었지.
나는 중학교 3년을 제외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일기를 쓰고 있어. 중학생 때는 왜 쓰지 않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빴던 것 같아. (웃음)
고등학생 시절에는 기숙사 학교에 가게 되어서 밤 11시까지 독서실 자습을 했는데, 할 수 있는 딴짓이 일기 쓰기밖에 없었어. 일기를 매일 쓸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외적, 심적 사건들도 일어났고 말이야.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는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어. 사진까지 열심히 첨부하면서.
단지, 일기가 내 일상을 기록하는 만족감을 주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아.
일기를 쓰면 마음이 단정해져, 그리고 가벼워지고. 오늘 아침에 일기를 쓰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어. 내가 찾은 이유는 두 가지야.
먼저, 나는 찍어둔 사진을 기초로 일기를 써. 사진을 찍는 순간은 대체로 그 풍경이 내 마음을 움직였을 때지. 그런 순간들이 나열된 모습을 볼 때 '감사할 일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 일기에 첨부된 사진은 심란한 마음으로 동네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목련 나무, 귀여운 강아지 미용실, 지인 분께 받은 책갈피, 맛있게 먹은 두부전골, 해가 잘 들 때 찍어둔 방 사진이었어. 하나하나 돌아보며 즐거워했었지.
그리고 두 번째는 좋지 않았던 일을 일기로 쓸 때 나타나는 효과야. 나는 부정적인 일들도 일기에 꼬박꼬박 기록하곤 해. 나는 그 일을 일기에 '버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니, 그 일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힘들지만, 없던 것으로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내 언어로, 내 관점으로 해석하여 '나의 경험'에 포함시키는 것. 일기를 쓰며 내가 했던 일은 이런 일인 것 같아.
이런 해석에 나름 이론적인 배경도 있는데 말이야. (웃음) 내가 일기 쓰기를 위처럼 해석하며 떠올린 이론은 '인간중심 심리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의 이론이었어. 그는 부적응적인 심리 현상이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두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했어.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부정하거나, 느낌 자체를 인지하지 않거나, 다르게 왜곡하는 것이지.
로저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경험을 자기의 것으로 두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어. 가령,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쉬고 있을 때 나는 몸이 편하고 즐거운데, 외부의 기준(시간을 그렇게 허비하면 되나?. 정말 비생산적이네, 매 순간 열심히 살아야지 등)으로 자신을 평가해서 '이렇게 쉬고 싶어 하는 나는 쓰레기야'와 같이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그 외부의 기준은 오랜 시간을 걸쳐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외부의 것이라는 걸 깨닫기도 어렵다고 해. 그렇기 때문에 로저스는 여러 사건을 마주하며,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어.
블로그 등에 쓰는 일기는 공개적이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작자도 '나', 첫 번째 독자도 '나' 그리고 내용도 '나'에 대한 것이야. 내가 겪은 일을 내가 쓰고 또 내가 읽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로저스가 심리적 불편감을 겪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했던 '자신의 경험을 깨닫고 수용하는' 연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때때로 성공하기도 하고 말이야.
괜히 어려운 말들을 섞어 설명한 것 같은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 일기 쓰기가 스트레스 풀이에 참 좋다는 말이야. 그래서 너에게도 추천하고 싶어. 일기를 쓰며 네가 경험한 것들을 온전히 '너의 것'으로 만들기를.
*
결, 혹시 너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니?
*
봄봄하지만 아직은 바람이 많이 차.
가지도 여전히 허전하고 말이야.
어서 밤마다 산책하러 나서고 싶은 봄이, 연한 잎들이 가지를 채우는 봄이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거 아니? 다음 주면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은 지 일 년이 된다는 걸.
그럼,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
2023.03.19.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