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오랜만이야.
지난봄, 어떻게 지냈니?
오월이 채 가지도 않았는데 다 지난날처럼 봄에 대해 묻는 게 조금 어색하지만, 어제오늘 올려다본 하늘에 여름 구름이 한가득이라서 이제 지금의 계절을 초여름이라 불러야 할 것 같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올해 봄이 가버렸네.
나는 지난봄, 첫 회사에서 퇴사했어. 사 년 반을 다녔더라. 찰나 같았는데 대학교를 다녔던 시간만큼 회사에 머물렀다는 게 조금 실감 나지 않았어. 퇴사가 결정되고는 아침에 머리 감으면서 울곤 했던 신입 시절이 종종 떠오르곤 했어. 그리고 마음이 망가졌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런 시기마다 마음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던 사람들이 생각났어. 그 시기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저릿하지만,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입꼬리가 슬쩍 절로 올라가. 그러면 조금 울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가 고마운 마음이 꽉 들어찬 채로 회상이 끝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
그리고 지난주에는 시험 하나를 치렀어. 한창 공부를 하던 사월에는 건강 문제가 생겼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이명이 들렸었지. 깨어있는 시간 내내 들리던 삐-소리도 괴로웠지만, 마음의 문제가 이렇게 몸에 그대로 드러난 적이 처음이라 두려웠어. 그게 일종의 경고 같아서, 시험에 대한 불안을 조금 내려놓고 공부도 좀 덜하고, 내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사람들 곁에 있으려 노력했어.
그래서 아무래도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할 것 같지만, (웃음) 마음은 편안해.
지난봄은 나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 시기였어.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어. 근데 집단 상담에서 그게 아니었다는 걸 생생하게 깨닫고 왔지.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았던 게 아니라, 나에 대해 자주 생각했던 거였더라고.
내 마음에 이르는 어떤 길이 있다면, 나는 어떤 잘못난 길에 자주 들락날락하며 진짜 마음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고서 '나 여기 잘 알아!' 했었더라고. 나는 현실세계에서 지도를 꼼꼼히 보고도 길을 잘 못 찾는 길치인데, 마음에 난 길들에서도 열심히 헤매고 있었던 것 같아(웃음)
헤맴을 멈출 수 있었던 건 팔 할이 집단 상담 리더 덕분이었는데, 그가 내게 해준 건 한 가지였어.
리더는 내가 삶을 '나로서'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내가 헤맸던 이유는 내게 벌어지는 일들을 내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상대 입장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어. 내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마음에 이를 수 있는 질문들을 건네준 리더에게 정말 고마웠어.
그날 일기 마지막 줄에 나는 이렇게 적었어.
'비로소 내 감정 안에 머물며 편안함을 느낀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편안함이었어.
*
결, 너는 어때? 너의 감정 안에 머물며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
편지하지 않는 날들 동안 네가 가끔 떠올랐어.
너를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지만, 보고 싶었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다시 편지를 쓰는 순간이 행복해.
*
무사히 봄을 보내고 함께 여름을 맞을 수 있어서 기뻐.
여름에는 더 촘촘히 지내자 우리
그럼, 다음 주에 또 편지할게.
평안한 한 주 보내길 바라.
2023.05.14.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