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고향에서 일주일 동안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울에 살았지만, 사실 서울이 내게 맞는 도시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서울에서의 생활공간인 원룸의 환경이 취약한 탓이 크겠지만, 그것을 제하더라도 가끔, 아니 자주 이 거대하고 편리한 도시가 버거웠던 것 같아.
회사에 다닐 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면 곧바로 지워버리곤 했지만, 퇴사를 한 후에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어.
얼마 전에는 <다른 방식으로 듣기>라는 책을 읽었어. 저자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각자만의 소리에 갇힌, 교류의 가능성을 차단한 사람들로 묘사했어. 그 관점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거부감이 들었어. 저자는 풍부한 소음 속에서 무엇을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한밤, 옆방인지 윗방인지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풍부한 소음의 범주에 들일 수 있을까.
다른 자극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만원 지하철에서는 몸에 닿는 것들을 통제할 수 없고, 옆집의 저녁 메뉴나 섬유유연제의 향을 알게 되고, 굳이 보지 않았어도 될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알고 싶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공공장소부터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까지. 풍부한 수준을 넘어 과잉한 자극들이 버거웠던 것 같아.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모여있는 건 사람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지만, 과밀한 인구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쉽게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아.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아무래도 성향에 맞지 않기에,
무엇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풍부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엇을 전경으로, 또 무엇을 배경으로 둘지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
위의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들이 있기에 명확히 ‘그래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고향에서 지내볼 예정이야.
고향 대구에는 옛 기억들이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듯 남아있어 그곳에서 다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게 조금 두렵긴 하지만, 적응력 하나는 자신 있기에 금방 또 그곳에서의 일상을 꾸려나가겠지.
대구에 가면 내 방 앞 작은 텃밭에 바질과 루꼴라를 기를 거야.
그리고 매주 이렇게 편지도 쓸 거고.
아무래도 결이 조금 바뀌지 않을까 싶은데, 그 변화를 함께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
결, 너는 어떤 공간과 결이 맞니?
*
서울이 버겁다고 얘기했지만, 서울이 내게 잘 맞지 않는 곳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년 동안 사랑하게 된 서울의 구석들이 많아.
하나를 꼽자면, 우리 동네.
다시 서울로 돌아오더라도 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동네를 걷다 어색한 표정이 되곤 해. 정을 떼야지 하다가도 아니야 아직 여기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해야지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이 되는 거지. 아무래도 후자를 선택하는 게 더 현명할 것 같아서, 남은 시간 동안은 입꼬리를 조금 올리고 산책하게 될 것 같아.
*
흐린 날에도, 자외선 지수가 높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이야.
한낮의 볕 조심하고, 물 부족하지 않게 마시며 건강히 지내길 바랄게.
그럼 결,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
2023.06.11.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