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늘 글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학창 시절 문학소녀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것도 틀린 추측은 아니지만, 사실 나는 과학을 제일 좋아했어. 비구름이 만들어지는 원리나, 유전자가 대물리는 과정, 중력이나(사실 이건 좀 싫어했지만) 분자 결합 모형을 공부하는 것, 지구의 깊은 곳에 대해 배우는 것, 암석의 종류와 달의 모양을 암기하는 것. 이렇게 짚어보니 과학 아닌 게 없는 것 같기도 해.
고등학교 진학 후, 수학에 흥미가 없었기에 문과를 선택했고, 그렇게 과학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어. 그리고 최근까지는 과학을 미워하기도 했던 것 같아.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 학문이니까. 즉, 진리를 가정하는 학문이니까. 모든 것이 불분명하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과학이 가진 그 여지없음이 두렵게 느껴졌어. 어떻게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단언하지, 하고. 어쩌면 내가 더 알고 싶었으나 알지 못했던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섞인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학을 좋아했던 이유도 위의 이유와 다르지 않아. 분명하니까,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있고, 그 과정을 묘사할 수 있으니까. 그게 통쾌하고, 한편으론 안심되었던 것 같아.
중학생 때의 내가 나의 바깥, 자연의 원리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의 나는 나의 안쪽, 마음의 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서는 심리학을 ‘사회과학’으로 분류했고, 연구 방법 또한 과학적인 방법을 지향했어. 대학생 때의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해. 알고 싶은 대상이 있고, 그 앎을 최대한 진리에 가깝게 하기 위한 학문들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자연과학과 심리학은 아주 다르지. 심리학의 연구 대상인 ‘마음’은 직접 해부해 볼 수도, 측정할 수도 없기에 간접적인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가령, 누군가 손바닥에 땀이 나고, 호흡이 불안정하고, 목소리가 떨린다면 ‘지금 저 사람 초조한가 보군’ 하고 마음을 추측하는 거지. 말 또한 마찬가지야. ‘나는 지금 슬퍼’라는 말이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슬픔’의 개념이 다르므로, 또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진리라고 할 수 없지.
끝내 명백해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탐구하는 이 학문이 나는 마음에 들어.
*
두 학문이 마음속에서 오래 엉켜왔기 때문일까? 나는 요즘 마음의 상태를 자연과학의 원리를 빌려 설명하는 걸 좋아해. 그중 한 가지를 너에게 말하고 싶어.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유는 달의 중력 때문이야.
달과 가까워진 쪽의 바다가 그 힘에 이끌려 해수면을 높이고, 그렇지 않은 쪽은 바닥을 드러내지.
갯벌이 되어 그곳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거야.
마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이끌릴 때, 수면 아래 있었던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일.
결, 혹시 너의 마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적 있었니? 그때 네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
나는 그 드러난 바닥을 마주하는 게 버겁기도 했지만, 이런 마음이 내게 있었구나 알게 되는 게 좋았어.
가끔은 그 바닥을 함께 산책하던 사람과의 경계를 잃어버려 곤란함을 겪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조금 생겨서(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이후, 그러나 너무 멀지 않은 편지에서 말해줄게) 다음에 또 그럴 수 있다면, 그러니까 바닥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야.
*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먼 날의 예보까지, 모두 비구름 그림이 한가득이야.
장마라고 해. 불볕 같은 더위를 아직 겪지는 않아서, 때 이른 장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장마 동안에도, 그리고 그 후에 내리쬐는 날들에도 늘 편지할게.
2023.06.25.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