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에게,
안녕? 첫 번째 편지를 여행지에서 시작하고 있어. 올봄, 먼 곳으로 이사 간 친구를 만나러 경주에 왔거든.
봄 한가운데를 지나는 경주는, 꽃이 피어난 자리마다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어.
새잎 하나도 돋지 않은 나무에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믿을 수가 없다.
여행 첫날에는 황리단길과 첨성대를 걸었어.
비수기 여행을 즐겼던 나와 친구는 과열된 경주의 거리에서 정신을 자주 놓칠 뻔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지어 보이는 저마다의 행복한 표정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어.
두 번째 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갈 법한 공원을 걸었어.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실을 나온 가족들이 많았고, 친구와 나 같은 관광객도 많았지. 공원에서는 '진짜' 축제가 열리고 있었어. 눈이 아리도록 하얗게 핀 벚꽃 아래로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꼭 붙어 걷고 있었어. 2년 7개월 만에 공연을 나왔다는 각설이는 노래를 부르다 울먹거리기도 했어. 반주만 흐르던 그 순간을 구경꾼들의 박수와 함성이 채워주었어.
둥둥거리는 반주 소리 물건과 음식을 사고파는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 아이들 웃음 소리 말 소리
그 풍경을 가로질러 걷는데 조금 슬퍼졌어. 아름다움의 한가운데 있을 때, 나는 자주 슬퍼.
친구와 헤어지고,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던 중에 대로변에 내렸어. 첫날 숙소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대로변에 나란히 있던 도서관과 절을 보았는데, 그 풍경이 잊히지 않았거든. 가보아야겠다 생각했지.
지금은 그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여기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있어. 책을 빌리러 온 사람,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사람,
산책을 나온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어. 그리고 위로받고 있어.
내가 이 도시를 떠난 후, 봄이 가면 축제는 사그라들겠지만 이곳의 일상은, 보통의 날들은 이어질 테니까.
이곳과 아무 상관 없는 내가 괜히 안심을 하고 있어.
여행의 끝에서 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집에 두고 온 내 일상 생각도 나고 그렇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무수한 이유 중 하나는
일상을 그리워하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영원할 거라 믿어서 그런지 나는 자주 일상에 소홀해지곤 하거든.
너는 어때? 최근에 여행을 갔던 적이 있어? 여행지에서 슬픔을 느꼈던 적이 있는지도 궁금해. 그리고 떠나야만 깨닫게 되는 게 너에게도 있는지. 멀어져야만 아프게 알게 되는 게 너에게도 있는지 궁금해.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야.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을 함께 동봉할게. 오늘, 어제 담은 반짝거리는 풍경도 함께.
사방으로 환한 것들이 피어나는 계절, 네 마음이 안녕하길 바라.
또 편지할 거야.
2022.04.03.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