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잘 지내? 라는 안부 묻기가 망설여지는 한 주를 보냈어.
나의 생활은 시계 초침처럼, 처마에 맺혀 똑똑 떨어지는 빗물처럼 일정하고 또 고요하게 흘렀지만,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거기 뜬 속보들을 확인할 때면 시간이 꼬이고 또 폭풍우가 몰아치는 기분이었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이 편지에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을게. 네가 어떤 상황인지, 마음인지 나는 알 수 없으니. 혹여 그 일들을 부러 깊이 보지 않은 너의 일상에 큰 파장을 일으킬까 봐 겁이 나.
다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어.
죽음은 받아들여야 하는 단 하나의 운명이라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했다면,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외면하거나 그 권력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 앞에서는 망연하고 화가 나.
나는 이번 주 내내 이런 생각, 그리고 감정과 함께 지냈어.
*
결, 너는 몇 살이니? 한 번도 네 나이를 물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만 나이가 적용된 후로 나이를 어떻게 세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붕 뜨는 느낌이 아무래도 싫어서 세던 대로 계속 세기로 했어. 나는 올해 스물아홉이야.
예전에는, 특히 지금보다는 어리지만 완전히 어리지는 않았던 이십 대 초반에는, 여한 없이 행복한 순간이면 종종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어. 죽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마 두 감정이 섞였을 거야. 정말 문자 그대로, 여한이 없어서 생에 미련이 없는 마음 하나. 그리고 두려움 하나.
서서히, 조금씩 영원이 없다는 걸 깨닫던 때였고, 세상이 꽤나 험난하다는 걸 체감하던 때였거든.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맛보던 삶은 아주 순한 맛이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에도 드물게 '여한 없이 행복한 순간'을 만나곤 해. 하지만 그 이후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꽤나 달라졌지. 예전에는 충만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면, 지금은 두려움이 있던 곳에 고마움이 자리 잡았어.
고맙다는 마음은, 내가 누린 행복을 갚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져. 세상에 나고, 또 그곳에 살며 느낀 것이니 보답하고 싶은 대상 역시 세상이야. 막연하게나마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또 의미를 두고 있어.
아주 오래전, 너에게 건넸던 질문이 떠올라.
- 질문은 오직 하나뿐,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메리 올리버)
'오직 하나의 질문'이라는 수식은 내게 '가장 어려운 질문'으로 읽혀. 그래서 아마 그때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오늘 비로소 첫 번째 대답을 찾은 것 같아.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은 내가 그로부터 받은 좋은 것들이 다시 그 안에서 공명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야. 먼저, 내가 받은 것들이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 보고 싶어.
결, 너는 어떤 방식으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니?
*
비가 많이 오고, 또 그렇지 않은 날들에는 무더운 요즘은, 바깥이 두려워 자꾸만 안으로 파고들게 돼. 그럴수록 바깥에 닿고 싶은 마음은 커져 가는 것 같아.
여름에게는 미안하지만, 벌써부터 나는 가을을 기다리고 있어. 어떤 변화를.
결, 그럼 이번 한 주 평안하게 보내길 바라.
2023.07.22.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