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날이 더워서, 평소에는 잘 기능하여 있는 줄도 몰랐던 몸 구석구석의 하소연을 들으며 보낸 한 주였어. 특히 허벅지가 뻐근해서 벽에 다리를 대고 L자로 자주 누워 있었지.
그리고 주말에 만났던 친구의 확진 소식을 들은 터라 방에 박혀서 생활했어. 사흘 동안 증상도 없고, 키트 검사도 음성이라 수요일 즈음에는 사실 외출해도 괜찮았지만, 방에서 지내는 게 나쁘지 않아서 관성처럼 그렇게 토요일까지 대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았어. 오일동안 데칼코마니로 찍은 듯 엇비슷한 하루들을 반복했어.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방 정리나 집안일을 조금 한 후에 한 시간 정도 유튜브를 봤어. 주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EBS에서 기획한 자본주의에 대한 영상이 특히 만족스러웠어. 1부 제목은 '돈은 빚이다'인데 예금 통장에 넣어둔 내 돈의 1/10만 남겨두고, 은행에서 9/10의 돈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 준다는 사실에 조금 충격받았어. 괜히 은행앱에 들어가서 숫자들을 확인하고, 이건 어쩌면 허상이구나 같은 생각을 했어. (사실 조금 무서워져 돈을 현금으로 뽑아오고 싶었어) 하지만 나도 다른 은행에서 (누군가의 예금일) 전세대출을 받은 상태고, 조금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기에 계속 다큐멘터리를 보았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더 확실하게 아는 것이 불안을 줄이는 방법인 것 같아서.
그 후에는 오전 공부를 조금 하고, 배가 적당히 빈 것이 느껴지면 요가를 했어. 그 후에는 다시 점심을 먹고, 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는 몸을 식히려 샤워했어. 오후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을 때는 나에게 보상을 주듯 에어컨을 틀었어. 그리고 잠시 쉰 후에는 온라인 그룹 스터디에 참가했어.
대체로 만족스러웠는데, 취침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또 점점 늦어져서 그 부분을 다음 주에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결, 너는 이번 한 주 어떻게 보냈니?
*
내 일상은 고요한 방 안에서, 마치 진공 상태인 듯 대체로 평안하게 흘렀지만, 사실 매일 조금씩 울었어. 어떤 날은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를 듣다 가사가 너무 좋아서(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야), 그리고 잘 기억나지 않는 짧은 순간들, 하지만 대체로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일그러졌어.
나는 믿음, 그러니까 내가 어떤 것을 믿기로 선택하는지가 나의 주관적 현실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 객관적 사실은 하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각자의 현실이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가령, 멧돼지가 민가로 내려왔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그 사건을 '야생 동물이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는 사례가 발생했으니 사살 대책이 필요하다'로 해석하는 사람과 '멧돼지도 사람을 무서워할 텐데 왜 민가까지 왔을까? 서식지에 변화가 생겼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주관적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
나는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지 않는 수준에서, 자신의 결에 맞는 현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늘 믿어왔어. 그 현실은 어쩌면 이런 것. 스쿠버다이빙할 때 사용하는 호흡장비나 우주비행사들의 우주복처럼 내가 살아갈 만한 세상을 만드는 거라고.
나의 세상에서는 성선설이 정설이고, 사람들은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선천적 기제를 가지고 있으며, 비관보다는 낙관이 힘이 세고, 권선징악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었는데 한 주 동안 보도된 속보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런 세계와는 전혀 결이 맞지 않아 절망스러웠어. 호흡 장비가 멈추어버린 듯, 우주복에 결함이 생긴 듯 숨이 가빠졌지.
그럼에도 방 문만 열면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과 매일 차분하게 지던 해와 유난히 밝았던 달 덕분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날 속에서도 무사히 하루들을 보낼 수 있었어.
*
그리고 주말. 육일 만에 대문 밖으로 나갔어. 언니들과 독서모임이 있었거든. 모임 전에 함께 짧은 공연을 관람했어. 무료 공연이라 엄청난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색소폰 콰르텟 연주가 시작되는데 눈물이 핑 고였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반짝거리는 악기, 깊고 맑은 소리,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선율, 화음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만든 것도 사람이구나. 위태롭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시소가 다시 평형 상태로 돌아오듯, 기울어졌던 마음이 다시 편안한 상태로 영점 조절되었어.
연주자들이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도, 이렇게 객석이 꽉 찰 줄 몰랐다며 살짝 긴장된다고 솔직한 마음을 슬쩍 내비치는 모습도, 호응에 활짝 웃는 모습도, 함께 공연을 관람했던 사람들이 들썩거리며 연주에 집중하던 모습도 모두 선명히 남아 있어. 오래 복기하고 싶은 장면들.
언니들과 밤까지 신나게 일정을 마무리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 년 전 여름 처음 만났던 최은영 작가님의 어떤 문장이 떠올랐어.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나는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최은영, 모래로 지은 집 中)
한동안은 이 문장을 자주 떠올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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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너는 어떤 현실 속에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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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는 태풍 소식이 있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더위가 영영 꺾일 거라는 말과 엘리뇨 영향으로 올해는 9월까지 한여름처럼 더울 거라는 예견이 뒤죽박죽 섞여 퍼지고 있어.
날들을 직접 살기 전에는 무엇도 사실이 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의 날들보단 가혹하지 않길 바라며, 점점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믿으며 살아보려고 해.
그럼 결,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
2023.08.06.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