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옆 테이블 아이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 편지를 쓰고 있어, 가족들은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데 혼자 신이나 몸을 흔들며 꺄르르 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제법 높지만, 카페까지 오는 길은 더웠어. 아직도 양산 없이 양달을 걷기가 망설여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서, 콧물을 훌쩍이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곤 해. 환절기를 지나고 있어.
나는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이제 두 달 남짓 남아서 종종 불안을 느끼며 지내고 있어. 영어 독해력과 번역 실력이 필요한 시험이라 요즘은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읽는데, 도통 이해되지 않는 문장 구조를 발견할 때마다 작게 절망하곤 해.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집중하며 이 시간을 조금 덜 불안하게 보내려 노력하고 있어.
나의 불안은 아주 구체적이야. 가령, 분명히 공부했는데 낯설게 느껴지는 내용을 마주할 때, 나는 자동적으로 나를 비난하고(이거 봤었는데 왜 몰라!), 그런 후에 두 달 뒤에나 갈 시험장에 나를 데려다 놔, 그 시험장에서 또 그 개념을 몰라 답을 적지 못하는 나를 상상해.
상상에 쉬이 몰입하는 나의 모습을 대체로 좋아하지만, 이럴 때는 별로인 것 같아. 상상력에 힘입어 아주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되는 불안을 잠재우려고, 다시 나를 지금, 여기로 데려오려고 애쓰고 있어.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수능은 어떻게 쳤나 조금 의아하기도 했어. 수능을 준비하던 날들에는 제법 의연했었거든. (웃음)
간절한 마음은 적절할 때는 강력한 동력이 되지만, 조금만 넘쳐도 곧잘 불안이 되어버려 다루기 어려운 것 같아.
결, 너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니?
*
한편으로, 요즘에는 도움받는 기분을 자주 느끼고, 고맙다는 감정도 덩달아 깊이 느끼고 있어. 도움의 종류는 다양하지. 내가 요청하고 부탁하여 받는 도움도 있고, 말하지 않은 마음을 알아봐 주어 먼저 건네주는 도움도 있고, 나도 몰랐던 나의 필요를 먼저 발견해 주는 도움도 있지. 이번 한 주 동안 그런 도움들을 각각 공부를 도와주는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받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의 자료를 선뜻 보내주겠다는 선생님께, 안부를 묻고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던 친구들에게, 그리고 마음이 혼란스러운 때마다 장난을 걸고, 산책을 시켜주었던 가족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어.
그러면서 생각했어. 도움을 잘 요청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법도 잘 모르고, 도움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왠지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자기 일을 혼자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무섭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또 귀찮기도 해서. 그래서 아쉬운 결과를 내거나 비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가 많았지. 그리고 도움을 잘 요청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기도 했어. 아,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거절할까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 같아.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는 예전보다는 곧잘 도움을 요청하곤 해. 막상 해보니 고마움을 느끼느라 자존심 상할 틈이 없고, 자기 일을 온전히 혼자 해낼 수 없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기쁨을 알게 되었어. 거절은 아직 두려워서 비교적 안전한 상황에서만 도움을 요청해서 많이 겪지는 않았던 것 같아. 어쩌면 까먹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는 세상과 더 가깝게, 넓게 결을 맞대고 살고 싶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관여하며. 그러니 도움을 요청할 일도 더 많이 생기겠지. 익숙하지 않은 행동이라 한동안은 어색하고, 어쩌면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도와달라는 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애써 참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아마, 이상적인 속도로 늘진 않지만 그래도 후진은 없는 영어 실력처럼,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 성심껏 연습하면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
결, 너는 어때? 도움을 잘 요청하는 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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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들과 대구 중심가 바로 뒤편에 있는 청라 언덕을 올랐어. 그곳은 대구 삼일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했고,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터를 잡고 교회를 세운 곳이기도 했어. 예전에는 역사적인 장소에 가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곳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작게 요동치곤 해.
100년도 더 된 교회 건물들을 보며, 외벽 벽돌의 단단함과 큰 나무같이 쭉 뻗은 창의 부드러운 곡선을 보며 주변을 산책했어.
그 풍경을 함께 동봉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