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아, 잘 지냈어?
이곳은 한 주 내내 꽃소식으로 넘쳐났어. 코로나로 몇 년 간 개방하지 않았던 여의도 윤중로가 열렸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었어. 무슨 광고처럼 말이야. 그래서 나도 가볼까? 했는데 사진을 보고 포기했어.
엄청난 인파더라고.
이번 주말에는 유난히 날이 따듯했어. 더웠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다들 서울숲으로, 석촌호수로, 창경궁으로, 공원으로 꽃놀이를 가는 것 같더라.
나도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동네 공원을 걸었는데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라일락 가릴 것 없이 한가득 피어있었어.
심지어 새잎도 돋고 있더라.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
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뉴스를 보니 한국이 기후 변화가 극심한 나라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 다른 나라들 보다 2배나 빠르대.
매번 맞는 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계절에도 '다시 돌아오는'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없게 되는 걸까?
아참, 너는 건강 괜찮아?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 중 30%가 코로나를 앓았대.
나는 걸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피해 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3차 백신을 미리 맞았어. 그런데 접종 후에 며칠 동안 가슴 부근이 찌릿거리는 거 있지? 요가를 열심히 해서 그런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더라고. 그래서 작년에 미뤘던 건강검진을 '전년도 미수검자'로 신청했어.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예약을 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내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보게 될 예정이야. 물론 흑백에다 화질도 거칠겠지만.
몸에 조그만 증상이라도 나타나면 난 꼭 병원을 가거든, 스스로 유난스럽다 생각할 때도 있는데 안 가고 걱정만 하는 게 에너지가 많이 쓰여서, 꼭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오곤 해. 이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살고 싶은지, 죽고 싶지 않은지 깨닫게 돼.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살면서 말이지.
그리고 낯선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좌우명이 바뀌어. 삶에 대해 진지해지는 걸까? (웃음) 이번에는 심장 부근의 통증이라 두려움이 컸는지, 아주 어마무시한 좌우명을 만들게 되었어. 부끄러운 마음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데 말을 꺼냈으니 비밀로 하는 건 도리가 아니겠지.
이전의 내 좌우명은 '재미있게 살자'였어. 아주 모순적이지? 세상 재미없는 좌우명이잖아. (웃음) 그리고 바뀐 좌우명은 '내일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자'야. 아무래도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자기계발서 제목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데, 찾아보니 잘 안 나오더라고.
아무튼 나는 저 좌우명이 아주 많이 마음에 들어. 왜냐면, 가슴 부근이 아프기 전에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게으르게 사랑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공부도, 운동도 안 했거든.
저 좌우명을 가진 후에 많은 것이 변했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깨닫고 나니, 괜히 자존심 세우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져 잘 안 그러게 됐어. 그리고 조금 부끄럽지만 가진 애정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었어. 내가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인데, 아껴두어 못 쓰게 되면 아깝잖아. 그리고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공부하고 운동하는 일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어. 내 삶이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중요한 것들을 잘 챙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
너는 어때?
혹시 좌우명이 있어?
그 좌우명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면 함께 들려줘.
그 이야기를 들으면 네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답장 기대할게.
사람들이 그러더라,
지금이 봄밤 산책 타이밍이라고.
봄밤에 대해서라면 정말 할 말이 많아.
사실 오늘도 봄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좌우명으로 빠져버렸네 (웃음)
다음 주에는 봄밤 얘기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너도 봄밤 산책을 꼭 해보길 바라.
이번 편지에도 꽃 사진을 함께 동봉할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또 편지할게,
그동안 건강히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