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깜짝 놀라며 하루를 시작했어. 낮에는 그늘 없는 길을 걸으며 땀을 흘렸지만, 아침의 그 한기가 아직 생생해.
요즘 우리 동네에서는 맨발 걷기가 유행이야. 산을 둘러 걷는 좋은 코스가 있어서 나도 자주 그곳을 걸어. 맨발 걷기를 하고 돌아와서는 종종 발바닥을 만져보곤 해. 나무껍질 같은 굳은살이 조금 말랑해졌나 기대하며. 아직 크게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어쩌면 그 길을 걷는 게 굳은살을 더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맨발에 시원하게 닿는 흙의 느낌이 좋아서 신발을 벗게 돼.
이번 주에는 도전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어. 어떤 일이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는데, 그게 큰돈과 관련된 일이라 더 전전긍긍하게 되었어. 나는 계약 종료일에 전세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데, 집주인이 돈이 바닥이 났다며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이었지. 당황스러웠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관리하는 관리인에게 전화를 해보니 돈이 없는 상황은 아니라고, 그런데 요즘 전세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집주인 입장에서 그렇게 얘기한 것 같다는 설명을 듣고 조금 안심했어.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주인이 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일으킨 적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더 진정했지.
하지만 그 말들을 100% 믿을 수 없었기에 불안이 가시진 않았어. 불쑥불쑥 제멋대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상영되었어. 그렇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기 시작했어. 화는 불안의 연료가 되었고, 그렇게 며칠을 몸과 마음을 과하게 각성시킨 채로 보냈지.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몸과 마음을 그렇게 스트레스 상태에 두는 건 억울했으므로, 방법을 찾아야 했어. 먼저 유튜브에서 스트레스 감소 음악을 찾아 들었고, 아빠, 엄마와 이 문제를 상의했어. 인터넷에서 법적 대응 방법과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대처법을 찾아보았고,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는 말을 되뇌며 지금 사태의 긍정적인 면모를 찾아 정리해보기도 했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어. 요즘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진도에 맞춰 보고 있던 ‘실존 치료’ 이론이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어.
‘실존 치료’는 실존철학을 기반으로 형성된 심리치료 기법이야. 실존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실존은 ‘본질’에 대항하여 나온 개념인데, 본질이 보편적인 진리(이성, 도덕, 신)를 추구하는 반면, ‘실존’은 구체적이고 고유한 실체(개인의 주관성)를 중요시하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가 대표적인 실존 철학자야. 우리가 명령처럼 따라야 할 운명과 신은 존재하지 않고, 모두 혼돈의 세상 속에 던져져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말해.
그렇다면 실존이 심리적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우리가 실존을 버리고 본질을 따를 때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실존주의 치료자들은 말해. 그리고 우리가 실존을 버리는 이유는 실존적 조건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그들은 이야기하지. 즉,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조건들이 두려워 나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고, 나 아닌 절대적 존재 또는 개념에 나를 맡기는 거지. 하지만 완전히 그럴 수도 없으며, 그것에 근접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고유성을 포기하는 일이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거야.
이론가들이 실존적 조건으로 꼽은 네 가지를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서 아주 큰 종이 뎅뎅 울리는 기분이었어. 그 네 가지를 네게 말하기 전에, 먼저 묻고 싶어.
결, 네가 살아있다면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이 질문에 답해본 뒤에 편지의 다음 장을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야.
*
첫 번째 실존적 조건은 죽음이야. 탄생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확실한 미래이지.
두 번째는 자유야. 세상은 불확실하며 우리에게는 정해진 운명이 없으므로 자유가 있고, 때문에 매 순간 선택해야 하며 결과를 책임져야 하지.
세 번째는 고독이야. 우리가 아무리 타인과 친밀하다 하더라도 물리적, 심리적으로 명백히 분리된 존재라는 것에서 오는 소외감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야.
마지막은 무의미야. 무의미는 우리 존재의 절대적인 근거가 없음을 의미하는 조건이야. 즉, 우리가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는 거지.
각각의 조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부담감과 불안을 안겨줘. 죽는다는 사실은 생명체로서의 본능적인 공포와 연관이 있고, 자유는 선택과 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불안을 주지. 고독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도전적일 수밖에 없으며, 무의미는 허무함을 유발하지.
이렇게, 실존적 조건들은 우리에게 편안하지 않은 것들이야.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가지거나, 아예 부인하거나. 자유를 거부하며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고, 선택하기를 포기하거나. 관계에 집착, 또는 타인에게 착취당하거나. 허무함과 우울감에 압도당하거나. 술과 같은 약물에 의지하거나. 일이나 강박행동 등에 중독되거나. 또 다른 부적응적인 행동을 하며 조건들을 피하려 하는 거지.
하지만 그 조건들은 피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직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이론가들은 이야기해. 그들은 그것을 ‘존재할 용기’라고 표현했어.
실존 치료를 공부하며 이번 주의 나를 돌아보니, 존재할 용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세상은 나의 이상대로, 정해진 법대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닌데 그 불확실성과 그것에서 파생된 자유라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정해진 대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화를 냈고, 마주한 상황에서 선택하고 또 책임지는 것이 무서웠어. 그래서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것에 써야 할 에너지를 화를 내고, 과도하게 걱정하며 강박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썼던 거야.
물론 아직 모든 불안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이성이 마비될 만큼의 불안이 물러가고 일에 대응하기 위한 긴장 정도인, 적응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어. 그리고 불확실성과 자유에 분노하기보단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것을 책임질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앞으로는 이런 조건들을 더 자주 만나며, 더 자주 상기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게 되겠지? 상상만으로도 코끝이 조금 아려오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용기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언제나 생생하게 존재하고 싶으니까.
*
이 편지를 쓰며, 촘촘하게 굳은살이 배어있던 마음이 조금은 부드럽게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어. 내게 주어진 조건들을 애써 막아보려고 딱딱해졌던 마음들이 이제 조금은 숨을 쉬는 기분.
굳은살을 유지하기 위해 고여 있던 힘들이 이제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어디에 그것을 쓸 수 있을까? 조금은 기대되는 마음이야.
*
결, 그럼 또 편지할게.
가을 평안히 보내길 바라.
2023.10.01.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