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오랜만에 편지를 써.
가을 잘 보내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편지하지 않은 시간 동안 ‘이게 가을?’하고 물음표를 띄우고 지냈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아. 물들지 못한 채 떨어진 나뭇잎에 시선을 두기 어려워서, 하늘을 더 많이 올려다보았어. 높다란 하늘은 그래도 지금이 가을이라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겨울 같은 가을이 왔어. 난데없는 추위에 옷들을 겹겹이 껴입고 집을 나섰어. 정오의 볕에도 땀이 맺히지 않는 걸 확인하고, 비로소 안심하며 가을을 맞이했어.
한편으로는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가을을 알아차리지 못했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편지하지 않은 날들 동안 많은 순간 마음이 사나운 동물처럼, 또는 아픈 식물처럼 위태로웠거든.
시험은 다가오고, 전세보증금 대출 만기도 다가오는데 공부는 해도 해도 부족한 것 같고, 집주인은 확답을 주지 않았어. 내내 전투태세로 있으려 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이 낯설었고, 노랗게 썩어 들어가는 이파리 같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도 쉽지 않았어.
시험도, 전세보증금을 받는 것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시험일과 계약 만기일을 내 마음대로 당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최대한 현명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뿐이었어. 그리고 그러지 못한다 해도 나를 다그치지 않는 일.
불안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하고, 가끔 우울 속에 머물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때 밥을 먹고, 운동하고, 잠을 자고,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기를 쓰며 일상을 지켜나갔어. 이 시간을 잘 보낸다면, 앞으로의 날들에 큰 힘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최선을 다해 살아냈어.
그리고 지금.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기다렸던, 너무 기다려 그립기까지 했던,
도서관 컴퓨터실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며 편지를 쓰는 지금.
나는 지금 여기에 도착해 있어.
나는 그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왔고, 그 과정에서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어.
너에게 이런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뻐.
결, 너는 어때?
그간 어떤 날들을 지나왔는지, 너의 안부가 궁금해.
*
오늘, 올가을 처음으로 롱패딩을 개시했어. 보통은 겨울이 시작되고서야 꺼내는 옷이지만, 10도를 밑돌고 바람까지 부는 오늘은 그 옷이 아니라면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불 같은 패딩에 안겨서 강가에 있는 은행나무 숲을 거닐었어. 왜 아직까지 잎이 초록일까? 사람들은 그런 말을 주고받았어. 반쯤 물든 나뭇잎들을 보면서 과연 이파리들이 끝까지 물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도 숲은 충분히 아름다웠어.
2023.11.12.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