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귀한 풍경을 보며, 가족들과 평안한 시간을 보내는 순간순간에도 부지불식간 엄습하는 불안감이 있었어.
지난 6개월간 준비했던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의 생활에 윤곽이 잡혔는데, 시기마다 해내야 하는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외부 환경이 나를 도와줄지 걱정이 되었거든.
하나의 큰 불확실성을 넘었더니 무수한 갈래로 뻗친 잔가지 같은 불확실성이 두 팔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미래의 불안 요소를 포착하는 눈이 열리니, 변화에 대한 기대감과 즐거움이 자취를 감추고, 마치 숙제를 왕창 미룬 어느 방학의 마지막 한 주처럼 막막해졌지.
이건 내가 원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어딘가 확실히 왜곡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작은 위험 요소들이 불안감을 깨우고, 불안을 동력 삼아 반복적으로 미래를 곱씹으며 감정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위험 요소는 어느새 숲을 이룰 만큼 커져 버려 거기서 길을 잃었어.
상담사 선생님께 연락해서 급히 상담을 잡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이건 내가 다스려야 할 감정이고, 지금은 다른 사람의 지지가 오히려 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생각을 이어 나갔어.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찾았지.
삶이 숙제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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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야. 놀랍게도 이 질문을 찾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 문제가 파악되었다는 건, 이제 답을 찾을 일만 남았다는 거니까.
내가 두려웠던 이유는, 불확실성이 잔가지처럼 펼쳐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불확실성을 내가 모두 숙제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어. 숙제하듯 살아가는 건 내게 두려울 만큼 싫은 일이거든.
왜 나는 그 일들을 숙제처럼 느꼈을까? 나에게 숙제란 뭘까?
착한 학생이었던 나에게 숙제는 1)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2) 잘해야 하는 일이었어. 앞으로 마주할 일들이 숙제처럼 느껴졌다는 건, 그 일들을 반드시 해내야 하며, 뿐만 아니라 잘 해내야 한다고 나에게 명령내렸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 당위성으로 가득 찬 명령이 나를 갑갑하게 했어. 그런데 그 명령은 내가 내린 것이고, 그러므로 내 힘으로만 수정할 수 있을 테지. 나는 네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어.
먼저 ‘1) 해야만 하는 일이다’라는 명령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삶의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어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수월한 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거. 다른 길들을 모두 낭떠러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법을 잠깐 잊었던 것 같아. 그래서 한 길만 보며, ‘꼭 저 길로 가야 해’라고 생각하며 나를 낭떠러지로 몰았던 것 같아. 그리고 언젠가 자기용서 명상에서 들었던 문구.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없습니다’를 자주 곱씹어 보려고 해. 잠결에 들었던 이 문구를 통해 단숨에 나의 많은 면면을 용서하게 되었던 순간을 기억해 보기.
다음으로 ‘2) 잘해야 하는 일’이라는 명령을 거두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욕심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이른 달에 태어났고, 신체 성장과 정서 발달이 빨랐기에 유년 시절 또래 집단에서 무엇이든 잘하는 편에 속했었어. 지금은 평범하지만 종종 기준을 유년 시절에 맞추고, 마구잡이로 욕심을 부리곤 해. 그럴 때면 초점이 어긋나고, 소진될 위험이 커지지. 모든 것에 대해서 우월하고 싶다는 것은 욕심일 거야. 내게 필요한 것을 구분해내고,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 그게 욕심을 버리는 첫 번째 단계가 아닐까 싶어.
두 번째로는 모든 존재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 즉 운명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려고 해.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긴장이 풀리고 현재의 삶 그대로에 감사하게 되곤 하거든. 내가 너무 비장해질 때,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싶어서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게 방법이 되어줄 것 같아.
내가 이틀 동안 찾은 네 가지 방법이야.
결, 삶을 숙제로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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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어.
2023년을 시작하며 나는, 2023년에게 '집중하는 한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그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날들을 보낸 것 같아서 신기하고 기뻐.
다음 해에게는 어떤 별명을 붙여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어.
그럼 결,
올해와 아쉬움 없이 인사 나누며, 새해를 맞이하길 바랄게.
한 해 동안 고마웠어:)
2023.12.03.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