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봄이 왔어.
오늘 아침, 새벽에 내린 눈이 얼었다는 안전문자를 받긴 했지만(웃음),
지금의 계절을 봄이라 부르고 있어.
눈이 오는 봄을 봄이라 할 수 있을까?
경북의 한 산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그곳에서 사월의 눈을 만난 적 있어.
그때 나는 영어 보충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무심코 쳐다본 까만 운동장에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책 귀퉁이에 눈을 보았다고 적었던 게 기억나.
그 메모 때문에 다 푼 문제집을 제법 오래 버리지 못했던 것도.
그 눈은 찰나였고, 그 후 사월의 눈을 본 적 없지만,
그날이 마음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어.
결, 너에게도 눈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있니?
*
봄의 초입, 어떻게 보내고 있니?
나는 며칠 전 학교 기숙사에 입사했어.
세탁실, 취사실 같은 내부 시설을 하나씩 체험해 보고,
지도를 요리조리 돌려 보며 주변 지리를 익히고, 맛집 탐방도 시작했어.
마치 여행을 온 사람처럼. 하루 종일 눈을 반짝이며 지내고 있지.
이곳에서 지내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관계 맺으며 나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마음이야.
*
한때는 내가 머물렀던 사람을 시간-시기에 비유하곤 했어.
가령, 어떤 사람과 지냈던 시간은 봄 같았다, 아침 같았다, 방학 같았다 처럼.
요즘에는 사람이 가진 장소성에 종종 생각이 머물곤 해.
‘사람이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이미 그렇다고 답을 내려놓고도 오래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
지난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낸 대구에서는
오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만날 수 있었어.
그 사람들이 하나의 인상처럼 남았는데,
장소로 표현하자면 ‘피정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피정은 ‘피세정념’을 줄인 말로, 세속에서 벗어나 하는 수련을 뜻해.
카톨릭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다른 종교들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고 해.
나는 거기서 더 확장된 의미로 이 단어를 받아들였는데,
요란한 일들로부터 멀어져, 내면의 고요함에 몰두하는 일을 ‘피정’이라고 생각했어.
피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단어가 좋았어.
새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종소리 같기도 한 발음이 좋았고,
단어가 가지는 맑은 인상도 마음에 들었어.
대구에 오기 전에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탁한 소리에 시달리고 있었어.
귀에서는 24시간 내내 이명이 들렸고, 옆집과 윗집 소음에 잠을 설치기도 했어.
회사에서는 매일 새로운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스스로를 자주 다그치고 몰아세웠어,
서울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너무 시끄러운 탓에 그들에게 집중하지 못했어.
대구에 와서 회사도 사라지고, 너무 바투 있었던 이웃들도 없어지고, 지나친 인구밀도에서도 벗어나니
마음을 흐리게 만들었던 불순물들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어.
환경이 바뀐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사람들 덕분이었던 것 같아.
나를 꾸며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해석하지 않아도 될 말과 몸짓을 주고받으며 많이 웃었던 것 같아. 그러면 나의 자연스러운 마음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나는 가만히 그걸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했어.
그 시간들 속에서 매일 조금씩 나에 대한 집착을 거두고, 나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다시 시끄러운 곳으로 돌아왔으니, 나를 미워하게 될 일이 또 생기겠지.
그렇지만, 지난 세 계절을 지나왔기에 그 미움이 내게 치명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여기고 있어.
사실 작년 유월, 대구로 가던 기차 안에서부터 다시 대구를 떠나올 지금의 삼월을 두려워 했었어.
역시 그때 걱정했던 것만큼 슬프지만,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힘이 내 안에 생겨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저번에 네게 편지하면서 ‘그 모든 것이 내 것임을 받아들이자’라고 내게 일러둔 것도 도움이 되었고 말이야.
나의 피정지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껴.
내가 누렸던 그 장소를 언젠가 그들에게도 돌려주고 싶어.
결, 너에게도 피정지와 같은 사람이 있었니?
*
가끔은, 나는 어떤 장소와 닮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해.
그리고 나는 어떤 장소가 되고 싶은지도.
'상담심리사'라는 직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어떤 내담자에게는 안전하게 쉴 수 있는 방공호 같은 장소가,
또 다른 내담자에게는 자신에 대한 관점을 높여주는(자기 자신을 잘 알게 해주는) 전망대 같은 장소가,
또 때로는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탐구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장소가 되고 싶어.
공부를 하고, 실습을 하고, 자격을 갖춘 후에 이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또는 변하지 않을지 궁금해서
개강을 하루 앞둔 오늘의 편지에 이렇게 기록해 두려고 해.
결, 너는 어때?
네가 장소라면, 누구에게 어떤 장소가 되고 싶어?
*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제 진달래가, 목련이, 개나리가, 벚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겠지.
환하게 피어날 꽃들 아래서 종종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삼월을 보내길 바랄게.
2024.03.03. 민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