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칠월이 다 지나갔네.
늘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맘때면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하며 그걸 아쉬워해. 하지만 이번 칠월은 조금 달랐어.
연초 무료사이트에서 재미로 본 사주 중 찝찝한 내용이 있었어. 알지? 그런 곳에서는 두루뭉술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거. 근데 확인해 본 칠월 운세에는 안 좋은 이야기가 가득이었어. 그중 절대 멀리 이동하지 말라는 말과 충돌수가 있다는 말이 크게 다가왔었지. 왜냐하면 7월에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거든.
이미 날짜까지 맞춰둔 상태에서 다시 찾을 수도 없는 사이트에서 본 사주 내용 때문에 여행을 재고해 보자고 말하기는 어려웠어. 그래서 조용히 여행을 준비했지만, 떠나는 날까지도 조금은 불안했어.
타국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도로를 채운 오토바이를 보면서 '어... 충돌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별일 없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어.
연초 받은 운세에는 위 내용과 함께 건강을 조심해야 하며, 친구들과 다툴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었어. 7월 31일에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하지만 아무 일 없이 8월을 맞이할 수 있었지.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맞은 팔월이었는데, 고작 사흘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한 두 사람과 각각 마찰이 이었고, 또 뜬금없이 코로나에 걸려버렸어.(웃음)
두 사람과 이야기를 잘 마무리했고, 코로나 증상도 심하진 않지만... 운세는 정말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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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 있으니 생각이 소란스러웠다가 또 가라앉기를 반복했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숏폼을 내리 보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연구 주제 서치를 시작했어.
내가 지금 연구하고 싶어 하는 주제는 '은둔형 외톨이'야. 나는 늘 사회적 구조가 문제가 되는 현상들에 관심이 있었어. 많은 사회적 구조 문제 중에 사람을 좋아하는 내 특성과 맞닿은 것은 바로, 사람들과 양질의 접촉을 할 수 있는 장이 사회에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어.
유튜브에 올라온 은둔형 외톨이 영상을 보면서 그들이 은둔하면서 오픈 채팅방을 많이 이용한다는 것과, 거기에서 위로도 얻지만 회의감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들이 은둔을 시작한 이유는 각각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원인적 상황은 그들에게 양질의 접촉장이 부족했다는 점인데, 그렇게 은둔을 시작하고 다시 접촉하게 되는 장(오픈 채팅방)도 양질이 아니라 악순환이 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니까.
오픈 채팅방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경험이 궁금해서 논문을 검색해 보았더니 자료가 부족하더라고. 내가 연구해 보고 싶은데, 우리 교수님은 별로 좋아하시진 않을 것 같아. (웃음)
양질의 접촉장이 무엇인지 정의하려면 먼저, 양질의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
결, 너는 양질의 관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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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중요한 두 사람과 마찰을 겪으면서, 나는 비록 이 관계들이 나를 가끔('가끔'인 게 중요해!) 괴롭게 하지만 그럼에도 마찰 후에 질적인 변화를 동반하여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질이라고 생각했어.
사실 나는 '마찰'이 양질의 관계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도 해.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양질의 관계는 '관계에 참여하는 모두가 자연스러운 나인 채로' 맺는 관계인데, 이상적으로는 모두가 다 나인 채로도 서로 존중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마찰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했어.
다만, 마찰에도 양질과 저질이 있겠지.
저질의 마찰을 주로 행했던 때는 단 한 번의 마찰로 관계가 곧잘 파괴되곤 했어.
상대에게 말도 하지 않고 참다가, 일방적으로 나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마찰을 일으키곤 했지.
그런 시간을 견뎌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그런 시간을 내가 견뎠을 때도 있었어.
아직도 나는 양질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마찰을 종종 일으키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더 나아질 거라고 다짐하고 있어.
하지만 존중이 없는 관계에서는 마찰을 일으킬 동력도 생기지 않아 조용히 정리하는 편이야. 내가 말하는 마찰은 존중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마찰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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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게 슬프기도 해. 하지만 모두 나와 같다면 관계라는 게 성립할 수도 없겠지.
관계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어. 한병철 작가의 <에로스의 종말>에 나오는 문장이야.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고 붙잡고 알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서운함을 느끼고, 답답하고 화가 날 때 내가 떠올리고 싶은 문장이야. 나의 실망과 서운함, 답답함과 화가 내가 그들을 소유하고 붙잡고 낱낱이 알려고 인 감정이 아닌지 내가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마찬가지로 나의 아끼는 사람들이 나에게 위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 저 문장을 떠올려 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고, 붙잡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음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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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격리를 시작하기 전에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어디로 나갈 수 없는 날들이었지만, 격리를 시작한 후에는 더욱 답답했는데 너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박하사탕을 삼킨 듯 속이 화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자유로웠어.
얼른 회복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만만치 않은 여름이지만, 늘 건강하고 편안하길 바랄게.
안녕!
2024.08.04. 민경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