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이 편지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
지난 구월은 말 그대로 참 다사다난했거든.
어제, 건조기에서 꺼내온 빨래를 정리하며
이제는, 정말로 편지를 써야겠다 다짐하며 지난 구월을 떠올려 보았어.
근데 거짓말처럼 눈물이 팡 터지더라구.(웃음)
예전에 상담을 받을 때 50분 동안 몇 번이고 울먹이는 나를 보며
선생님께서 그때마다 눈물의 의미를 물어봐 주셨어.
‘지금 눈물이 흐르시는데 어떤 마음인가요?’
나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저 원래 툭 치면 울어요’라고 답하고 바삐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지.
선생님은 무어라 덧붙이지 않으시고 계속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어.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상담을 마무리하던 차에 내게 권유하셨지.
‘민경 님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에요, 울음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냥 잘 운다고 답하셨는데, 그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해요.’
그 말을 듣는데 머리가 뎅-하고 울리는 기분이었지. 울음은 신호인데, 마음이 보내는 확실한 신호인데 그걸 그냥 넘겼구나 싶어서.
빨래를 개다가 눈물이 터진 어제, 선생님이 해주셨던 이 이야기가 떠올랐어.
그래서 내게 물었지, 지금 이 눈물은 무엇에 대한 신호냐고.
‘버거워?’
‘아니.’
‘벅차올라?’
‘비슷한데 부족해.’
‘슬퍼?’
‘그런 것도 같아.’
그런 이야기를 나와 잠깐 나누다가, 지쳐서 잠을 청했어.
그리고 이제 오늘이 되어 다시 그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어.
*
지난 구월의 내 시간은 삼등분으로 쪼개져 있었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아침.
수업을 듣는 오후.
상담 실습을 준비하는 밤으로.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또는 주말이나 연휴에 사람들을 만났지.
개강해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교수님, 옆 랩실 박사 선생님들이 반가웠고,
새롭게 입학한 후배들을 알아가는 시간도 즐거웠어.
추석 때는 가족, 동네친구들과 편한 시간을 보냈고,
가을볕이 뜨겁던 어느 주말, 고등학교 친구들과 피크닉을 나서기도 했어.
학교까지 찾아와 준 친한 언니에게 내 아지트들을 소개해주었고,
늘 그렇듯 나와 조용히 산책하는 시간도 가졌지.
한 친구에게 ‘주인 열명 있는 리트리버가 된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들이 반가워서 자주 상기되었던 구월이었어.
이런 일들도 나를 울리기에는 충분하지만,
어제 흘린 눈물은 이런 벅차오름 때문만은 아니었어.
뭐가 더 있었을까,
*
구월에는 중요한 결심을 하나 하기도 했어.
누군가를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다짐하고 그것을 그 사람에게 전했지.
나를 위한 결심이었지만, 그 말을 전한 후 마음이 너무 아팠기에
진정 이게 나를 위한 건가? 의구심이 들어 몇 번이고 그 사람 카카오톡 프로필을 눌러보기도 했어.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최선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세부를 너에게 전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아래 문장을 읽어줘.
최은영 작가님의 <모래로 만든 집> 중 일부를 발췌했어.
“걔랑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하고 웃어도 괴로웠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달라서 외로웠어. 마음이라는 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났어.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 나가면, 내가 위의 문장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이어 나갈 용기는 내게 없었기에 그 사람에게 몇 가지를 확인하고 관계를 매듭짓게 되었지.
마지막 통화에서 그 사람은 내게 ‘진짜 좋은 상담사가 될 거라고’ 말해주었어.
그 장면을 떠올리면 사실 아직도 마음이 좀 일렁거려.
그런 말을 건네준 게 너무 고마워서, 그리고 그 말이 버거울 정도로 생생하게 와닿아서.
하지만 여기까지.
-
그 사람에게 그 말을 들은 바로 그날, 그 전화를 끊자마자
거짓말처럼 지원했던 수련 기관에서 합격 통보 문자를 받았어.
그리고 지금까지 세명의 내담자를 만났지.
내담자들은 내게 다양한 감정을 일게 해.
내담자들의 마음을 함께 탐색해 나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짙게 들었어.
무엇보다 매 회기 50분의 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가 버려서 이런 시간을 내가 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다만 한 가지 마음이 쓰이는 게 있다면, 내담자들과 마주하던 그 순간부터 언젠가 이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될 언젠가가 두려웠다는 거야.
이게 나의 숙제처럼 여겨졌고, 학생 상담센터에 상담 신청을 해놓았어. 잘 다루어서, 이 일을 하는 데 그 마음이 송곳처럼 튀어나오지 않길 바라.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
*
일기, 아니 편지를 쓰다 보니 어제 내가 왜 울었는지 조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해. 지난 구월이 내게 너무 생생해서, 그 생생했던 감정들이 일순간 덮쳐와서 압도되었던 것 같아.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어.
이것이 구조 신호인지, 아니면 축포인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마 알게 되겠지.
*
결, 너는 어때?
최근에 운 적이 있니?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니.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
가을볕 아래에서는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것만 같아.
그래서 어디 깊숙이 넣어두었던 마음을 끄집어내 보기도 좋은, 그런 날들.
이 가을, 너의 하루하루가 안녕하길 바라며
오늘 편지를 마무리할게.
다음에 또 만나!
2024.10.06. 민경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