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네가 만약 월요일(2월 3일)에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오늘이 입춘이라는 사실을 네게 알려주고 싶어. 봄이 코앞까지 왔어. 두근두근. 봄소식을 들은 네 마음은 어떨지 궁금해.
어제 해야 할 일을 우다다 끝내고 친한 언니를 만나러 갔어. 언니를 오랜만에 만나서 할 이야기가 되게 많을 줄 알았는데, 웬걸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어제 언니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잘 기억이 안나..'였어. (웃음) 언니도 나랑 비슷한 상태였어서 둘 다 바보 같이 웃으며 소바와 스콘을 먹고 헤어졌지.
맞아, 일월에 나 조금 바보 같았던 것 같아. 평생 한 번도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적 없었는데, 지난 일월에만 카드를 세 번 잃어버렸어. 한 번은 무인과자가게에 두고 왔고, 두 번은 길바닥에 흘려버렸지. 금방 잃어버린 걸 깨닫고 찾아와서 재발급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참 나답지 않은 일이다 생각했어.
더불어 말도 예전만큼 똑 부러지게 못 하고, 사람들도 헐겁게 대하고, 전반적으로 허술한 느낌의 사람으로 지냈는데 그렇게 사는 게 왠지 즐거웠어.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 싶었지.
지금은 다시 예전의 나에 가까워진 것 같아. 하지만 그 헐거운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일까? 완전히 예전의 나 같지는 않아. 그리고 그게 참 마음에 든다.
일월에 친한 언니의 독서모임에 놀러 가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냐는 물음에 나는 '유기체라서 정체성이 계속 변하는 것 같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대답했던 것 같아(잘 기억이 안 나).
신체의 노화로 신체적 긴장이 좀 풀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예전보다 감각들이 무뎌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내가 나를 돌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여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네.
예전의 나에게, 나는 평가의 대상이었어. 그러니까 늘 내부의 감시자가 있었고, 긴장했던 것 같아. 지금 그 감시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존재가 생겨난 것 같아. 그 존재에게 내가 붙여준 이름은 '나를 돌보는 나'. 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일이 어제 하나 있었어.
어제 언니랑 잘 놀고 버스정류장에서 혼자가 된 그 순간 슬픔이 올라왔거든, 그 슬픔을 들여다보니 '오늘 충분히 온 힘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스터디 준비를 안 했다는 이유로 나를 조용히 비난하는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나'가 느끼는 슬픔이었어, 연민이었어.
예전 같았으면, 같은 상황에서 짜증과 불안을 느꼈을 거야. 그러니까, 내부의 감시자가 마음을 총괄하던 시절. '너 스터디 준비도 안 하고 10시까지 논 거야?'라고 말하는 감시자의 감정이 곧 나의 감정이 되었을 거야.
하지만 어제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지. '나를 비난하는 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존재가 생겼고, 그 존재가 마음을 총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 존재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 '오늘 비록 스터디 준비는 못 했지만 이만하면 좋은 하루였다고 애썼다고' 나를 달랬어. 그랬더니 마음이 평화로웠어.
참 신기하지.
그리고 참 든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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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어.
결정적 순간은 있었지만, 아마 그전부터 쌓여온 것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나와 화해하는 것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리고 친하게 지내기. 그리고 지금은 나를 돌봄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지.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우연히 참가한 집단상담, 나의 애착 상담사 선생님과 다른 상담사 선생님들의 지지, 일기 쓰기, 대학원 진학, 몇몇 인연을 정리했던 일 등이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시간이 필요했던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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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지금 네 마음을 총괄하는 존재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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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했지만, 아직 바람이 너무 차네. 다음 편지를 보낼 즈음에는 봄에 훨씬 더 가까워져 있겠지?
감기 조심하고, 몸 마음 아프지 않고.
겨울에서 봄으로 나아가는 환절기 잘 보내길 바랄게.
다음에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