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흐르던 계절들이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올해 쭉 해왔어. 모든 계절이, 일상에 녹아든 배경 같이 느껴지기보단 포착해야 할 잔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지.
계절의 발걸음을 예측할 수 있고, 또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적에도 가을을 그리워하곤 했는데, 절기로는 가을이지만 실체는 없는 지금의 날들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
‘날 좋네’ 읊조리던 날은 많았지만 계속 무언갈 기다리는 마음이야. 너는 어떻게 이날들을 마주하고 있을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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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어. 취향에 맞는 영화들은 꼭꼭 챙겨보지만, 영화를 좋아한다 말하기엔 그보다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영화를 보러 부산까지 간다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어. 하지만 부산에는 바다도 있고, 낙곱새도 있고 또 여름내 참았던 여행을 가고 싶기도 했기에 연휴 일정에 맞춰 부산행 열차 티켓을 야무지게 끊어두었지.
영화에는 큰 기대가 없었지만, 그래도 영화관에서 잠들긴 싫어서 상영작들 설명을 꼼꼼히 읽고 예매를 했어. 총 세 편을 보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성공적이었어. 한 편은 눈물 찔끔, 한 편은 훌쩍거리며, 마지막 한 편은 내내 울면서 봤어. 내내 눈물을 닦으며 본 <수라>라는 영화를 네게 소개하고 싶어.
<수라>를 예매한 이유는 단순했어. 군산에 대한 영화라고 해서. 군산은 내가 가장 많이 갔던 여행지거든. 애정하는 관광지의 이야기가 궁금했어.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군산 풍경을 감상할 생각뿐이었지. 혹시 졸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하며.
군산이 영화에 부족함 없이 담겨 있었던 건 예상 그대로였지만, 그 풍경에 담긴 서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어. 무수한 죽음과 밀도 높은 아름다움이 혼합된 이야기가 거기 있었어.
‘수라’는 갯벌의 이름이야. 비단에 놓은 수, 라는 뜻을 가진.
30여 년 전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군산 대부분의 갯벌에 물길이 막히고 아예 메워지기도 했다는 거 혹시 알고 있었니?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 그 사업으로 갯벌 생태가 파괴되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삶이 붕괴되었어. 풍부한 갯벌의 생물들을 채집해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도 떠나고, 갯벌은 마르거나 사라졌어. 수라 또한 이전과는 다른 창백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어.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새들이 알을 품고, 보호종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해. 언젠가 물만 들어오면 이전의 생태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믿고 있어. 그런데 그 수라 갯벌에 군산 제2 공항을 짓겠다는 사업이 추진 중이라고 해. 제1 공항도 적자인 상태에서 말이야.
그 사업을 막고, 또 물길이 막힌 다른 갯벌에도 다시 해수가 유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갯벌의 아름다움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각자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그곳을 지키고, 재생시키고자 하고 있어. 사진과 영상, 소리로 생태를 기록하고 보호종을 정리하고, 법원과 시민들에게 왜 이곳을 지켜야 하는지 알리고 있어.
이 영화를 보고 울었던 이유는 영화에 담긴 두 종류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어. 첫 번째 아름다움은 갯벌과 그곳에 사는 존재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었고, 두 번째는 그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들이 품게 된 마음이 가진 아름다움이었어.
첫 번째 아름다움은 글로 전하기 어려워 나중에 영화를 보길 추천해. (내년에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래) 두 번째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잠깐 내 고등학생 시절을 빌려오려고 해.
그때의 나는 커서 글을 쓰고 싶었어. 작가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이미 작가가 된 사람들, 그중에서도 유명한 사람들이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했어. 그때 눈에 띈 책이 있었어,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상을 받은 작품들이고, 상 이름에 ‘현대’가 들어있으니 시의적절할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로웠지. 그런데 말이야, 그 책을 읽는 내내 의아했어. 그 소설들 속에 그려진 세계가 너무 무겁고 어두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거든. 그때 나는 ‘소설은 이렇게 어둡게 써야 하나?’ 생각했어. 그 이야기들이 현실의 아주 작은 면을 극대화해 왜곡한 세계처럼 느껴졌어.
하지만 성인이 되고서 그 이야기들이 무언갈 곡해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그냥 현실을 담은 것뿐이라는 걸. 세상의 기본값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그 후로 그런 현실을 계속해서 마주하면서 체념하거나 눈을 가리는 일에 익숙해진 것 같아. 대책 없는 허무에 빠지기도 하고,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아서 한 평 정도 남은 아주 작은 아름다운 세계가 모든 것인 양 살았던 적도 많았지. 그 밖의 세계를 바꾸려 드는 건 달걀로 바위를 치는 일처럼 느껴져 시작도 전에 힘이 빠졌거든.
그런데 영화에서 달걀로 바위 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본 거야. 어지럽게 흐트러진 잔해들 사이에서도 가끔 웃고, 그러다 바위에 금을 내기도 하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보며 아주 오랜만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았어.
세상은 나쁜 상태고, 점점 더 나빠지고 있지만 무언갈 함으로써 그럼에도 여전히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영화를 보며 깨달았어.
화면에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지만 내내 ‘정말 잔인하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았지만, 관객을 허무에 빠지게 하지 않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틈틈이, 그리고 마지막까지 선물처럼 건네준 이 영화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어.
많은 장면들이, 말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오래전 본 도요새 군무를 잊지 못해 계속 활동하는 한 사람이 한 말이 계속 마음속을 굴러다니며 여기저기 균열을 일으키고 있어.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그걸(도요새 군무) 본 게 죄인가 싶었다고, 아름다운 걸 본 것도 죄인가 묻고 싶었다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나도 같은 질문을 가지게 되었어.
도요새의 군무와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수라 갯벌의 풍경, 그리고 그곳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아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
네가 군산에 가본 적이 없대도, 갯벌이나 새에 관심 없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 잔인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압도하는 희망을 건네는 영화는 흔치 않으니 말이야.
나는 이런 영화를 볼 때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직시하고 다음 한 걸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를.
그래서 결아, 오늘은 내게 이 영화가 그러했듯, 네가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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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년에는 더 길게 영화제에 머물 거라고 다짐했어. 편지에서는 자세히 말하지 못했지만, 본 영화 모두 GV가 있었는데 정말 좋았거든. 보통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도 전에 다른 관객들에게 치여 영화관 밖으로 나가는 게 일상인데, 이곳에서는 다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기를 기다렸다가 공연을 본 것처럼 크게 박수를 치는 게 신기했어. 그리고 그다음에는 영화 제작자, 출연자와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눠. 스크린에서 톡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영화의 세계에서 천천히 빠져나올 수 있는 것도, 옅은 생각들이 선명해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만족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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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독감이 크게 유행할 거라고 하더라, 감기에는 자신 있는 나라서 예방 접종을 안 할 생각이었는데 널뛰는 일교차와 예측이 어려운 날씨 탓에 컨디션이 가을 같지 않아서 맞아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 모쪼록 아프지 않은 날들 보내길 바라며, 우리는 다음 주에 또 만나.